1949년 주한미군 전투 병력이 철수하면서 미 극동군사령부 직할 '주한연락처(Korea Liaison Office)'라는 이름의 비정규 첩보부대가 창설됐다. 영문 머리글자 KLO의 한국어 발음을 따서 '켈로부대'로 통상 불린다. 이 부대는 군번도 계급도 없는 비정규군으로 6·25전쟁 중에 첩보 수집과 후방 교란 등의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 무엇보다 켈로부대는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밤 인천 팔미도의 등대를 탈환해 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켈로부대는 전쟁 중 제8240부대로 알려진 미 비정규전 특수부대에 편입됐고, 휴전 후 다시 한국 국방부 산하 제8250부대로 재편됐다가 육군에 분산 편입됨으로써 완전히 해체됐다. 이 부대 활동은 군사기밀이었고 전쟁 후에도 비밀로 분류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관련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이들을 포함해 많은 비정규군이 전쟁 중 외국군(미군) 소속이거나 정규군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특별한 희생을 치르고도 그 공로를 한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뒤늦게 2021년 4월 '6·25 비정규군보상법'이 제정되면서 보상의 길이 열렸다.법 제정 당시 국방부는 법 적용 대상이 되는 부대원 1만8000여명 가운데 보상 대상자는 생존자 3200여명과 유족 1200여명으로 추산했다. 이후 지금까지 총 3880명의 공로가 인정돼 본인과 유족에게 약 370억원의 공로금이 지급됐다. 당초 예상했던 대상자들이 다 보상을 못 받았는데 보상신청 기한은 2023년 10월로 끝났다. 정부는 미처 신청하지 못한 고령의 공로자와 유족들을 위해 이달 1일부터 1년간 추가로 보상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지난해 법을 개정했다. 아울러 과거 특수임무자와 유족도 같은 기간 추가로 보상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국가가 어려울 때 헌신한 이들을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 그 공로를 기억하는 것은 후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예우나 보상을 바라고 조국에 헌신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을 걸맞게 예우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들은 지금도 말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켈로부대원 김일용 옹 2017년 언론인터뷰)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