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취기만 오르게 하는 게 아니다. 무심코 마신 술이 마음의 문까지 활짝 열곤 한다.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일 땐 그동안 가렸던 마음의 가리개도 훌훌 벗게 되어 본연의 모습으로 변모한다고나 할까. 그래 술은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라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말이 맞는 성 싶다. 하지만 술이 이런 이로움만 안겨주는 게 아니다. 때론 악마의 피가 되어서 만취(滿醉)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여태껏 술로 인해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주량의 대소를 떠나 신체적 반응 때문이다. 입에 술잔을 대었다하면 전신이 빨개지고, 숨이 가빠지곤 한다. 아마도 술 못 마시는 유전적 체질인 듯하다. 요즘 세태는 남녀를 불문코, 술 못 마신다는 말이 미덕은 결코 아닌 세상이다. 이로보아 술 문화는 사회적 구조에 따라 변하게 마련인가 보다. 현대는 남녀 귀천의 차별이 없어지고, 직업의 구분이 없어졌다. 술좌석에서도 남녀가 자연스레 서로 술잔을 권하는 술 문화가 보편화된 이즈막 아닌가. 그럼에도 술 한 잔 비우지 못하는 필자 스스로가 현대인답지 못하다는 자책이 들 때가 있다. 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고,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일정부분의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남성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남녀 합석에서 우위적 존재를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남성이다. 남성에겐 술이란 무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대할 때마다 여자로 태어남이 때론 후회스럽기도 하다. 이는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술의 독점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술이란 게 좋은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경구가 말하듯 술이 인간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본다. 알콜 중독자, 우울증, 폐인, 폐륜, 살인, 듣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이 말들은 한통속으로 술이라는 범인이 뒤에서 조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때 사회문제로 불거지는 주폭 또한 술이 원인이 아니었던가.갱년기의 우울증을 못 참아 집안에서 홀로 홀짝홀짝 마신 술이 원인이 되어 패가망신하는 이웃을 본 적 있다. 술에 취하여 이성을 잃으면 살림도 가족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지인도 있다. 그녀는 결국 황혼의 나이에 이혼이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끝내는 간암으로 생을 마치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가여운 여인이다. 그녀가 평소 술에 취해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가 있다. ‘한 잔의 추억’이란 노래다. ‘늦은 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며는/어데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며는/반쯤 찬 술잔위에 어리는 얼굴/마시자 한잔의 추억, 마시자 한 잔의 술/마시자, 마셔버리자.’ 일 핑계로 밖으로만 나돌던 남편을 대신하여 술 한 잔에 외로움을 위로받던 그녀였다. 나 또한 이 노래를 불러보곤 한다. 늘 우수에 젖었던 그녀의 어두웠던 모습이 눈앞에 어린다. 기분 좋은 죄악인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탓에 그것에 굴복한 그녀의 나약한 삶에 연민마저 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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