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면 젊은이들이 많이 드나드는 황리단길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골 동네 한산한 길이었지만 널리 홍보되어 이제 전 세계인이 이곳에 모여 인종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백인, 흑인, 그 외 유색 인종이 함께 어우러져 거리를 꽉 채우며 휴일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붐비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리를 상징하는 표지석으로 황리단길”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어 오는 사람에게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잘 짜여진 시비 내용이 한눈에 쉽게 들어오게 지역 유명 작가이신 효범 정수암 선생께서 예서체 글씨로 품위 있게 새겨 놓았기에 골목은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문학적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나태주 시인께서는 이 시를 ‘매우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4-3조를 바탕으로 신라의 정조를 여한 없이 가슴에 품었다. 천 년의 도시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천년의 수도란 말이 어디 또 있을 법한 일인가. 그런데 경주에 가 보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기에 경주는 모든 인류의 고향이 되는 곳이며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그러한 경주와 신라를 이 시가 보여주고 있다’라고 하였다돌이라면 경주 남산의 돌이 최고의 명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바이다. 이에 따라 남산 돌로 만들어진 시비가 오시는 님을 맞으랴 황리단길 입구에 이름표를 달고 항상 기다리고 있다. 내용을 보면 시가 눈망울을 굴리며 살아서 걸어 다니고 있는 것 같다. 글귀가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황남동 거리의 상인들은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여러 가지 묘책을 찾기에 이르렀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점을 보러 오는 사람이 고작, 거리에는 대나무 깃발이 군데군데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인적이 뜸한 골목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도록 천마 문방구 오창수 사장이 손을 들었다. 동네의 토박이 시인을 찾아 글귀를 부탁하기에 이르러 “황리단길”시가 탄생을 한것이다. 오 사장께서 직접 시를 가슴에 안은 채 가가호호 다니며 한 장씩 배포하기에 이르러 100장이 1000장이 되고 발 없는 시화지가 수십 리를 걸어간다. 백지 속의 시와 그림이 서로 수군거리다가 동네 길거리 담장에 벽화로 조성이 되었다.    역동적인 골목, 문화의 새싹이 트기 시작을 하였다. 일파만파로 거리에 사람이 북쩍이자 담장 조성 사업으로 시 벽화가 사라지게 된다. 벽화 속 시(詩)를 복원해 달라는 주민들의 청원으로 자그마한 공원에 황리단길 시비가 자리를 잡는다. 긴 역사를 싣고 꿈을 실현해 달라는 글귀가 눈앞에 반짝이며 꿈이 현실로 닥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전국 방송(TV 조선 노래하는 대한민국 예심장)에 시비가 소개되고 각종 매스컴의 조명을 받게 되자 과거와 달리 새로운 명성 높은 골목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해가 갈수록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명성 고적지로 화려하게 발전하였고, 거리가 하나 둘 바뀔 때마다 시비에 내용처럼 변하는 것 같아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하였다. 이처럼 황남동 주민들과 함께 “지구촌 끝까지 가슴에 품고서”천마를 타고 가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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