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故鄕)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며, 조상 대대로 생활해온 세거지(世居地)이다. 농업을 주로 하며 살았던 농경사회 때는 대체로 수령이 수십 년이 되는 푸른 느티나무가 마을 입구에 있었고, 같은 혈속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정답게 살던 촌락이었다. 조선(祖先)의 위패를 봉안(奉安)안 가묘(家廟)와 재실, 정자, 종가 등은 기와집이고 대부분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인 집성촌이다.    조부모 모시고 친족이 정답게 살던 청정한 마을이었는데, 산업사회 도래로 배움을 위해 혹은 직장을 따라 청소년들이 경향 각처로 혹은 유학과 국외 취업 때문에 출향(出鄕)하고 보니, 작금의 농촌에는 빈집이 늘어나고 소수의 팔질(八耋) 노인들이 고달픈 여생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문전옥답이 잡초지로 방치되었거나, 공장부지로 지목을 변경하여 잘 지어진 공장도 불경기에 더러는 폐쇄되었고, 교통이 다소 편리한 곳은 아파트가 건립되어 전래의 고향은 객지에 우거(寓居)하는 출향인에게는 망가진 꿈이 되고 말았다. 귀농(歸農)하여 고향을 다시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간혹 보이긴 하나, 현존하는 노인들이 불원지간(不遠之間)에 구원(九原) 정토(淨土)로 떠나버리면 농촌은 고향무정으로 무심한 찬바람만 불어닥칠 것 같은 세태다. 중국 당나라 시인 하지장(賀知章,659∼744)이 증성(證聖) 원년에 장원급제하여 국가공무원에 임명되어 장안에서 공직생활 하다가 비서감을 사직하고 80세를 지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이향(離鄕)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만감이 교차하여 ‘회향우서(回鄕偶書)’라는 시를 지어 남겼다. 少小離家老大回(소소이가노대회)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났다가 늙었을 때 돌아오니 鄕音無改鬢毛衰(향음무개빈모쇠) 말씨는 변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은 쇠하였네. 兒童相見不相識(아동상견불상식) 아동들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면서 笑問客從何處來(소문객종하처래)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웃으며 묻네. 낯선 노인을 바라보고 천진하게 물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은 옛친구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것이 분명한 듯 풀빵 같이 닮았다. 높은 이상과 청운의 꿈을 성취해 보려고 장안으로 나가 공직생활을 마치고 팔질(八耋) 노경(老境)에 태어나 자란 고향이 그리워서 찾아왔더니 옛친구는 보이지 않았고 자연환경은 상전벽해가 되었다.    그러나 아동들의 말씨는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유년 시절에 사용하던 사투리 그대로지만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손님은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묻고 있으니 어찌 고향 무정을 느껴보지 않을 수 있으리. 하지장은 청렴하게 공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황제는 그에게 경호와 심계 일대의 토지를 하사하여 광활한 토지를 갖게 되었다. 경호는 강남 최대의 수리시설이 있어서 가뭄을 극복할 수 있는 호수였다. 그것이 하지장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하감호라 불렀다고 한다. 회향우서는 이곳에 세워진 높이 1m, 너비 80여cm 크기의 시비(詩碑) 이며, 정자(正字)로 12행, 매 행 15자로 새겨져 있는데, 오늘날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여우가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처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기가 태어나 자란 고향을 어찌 잊을 것인가. 말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려는 마음이 없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그 대신에 산수가 좋은 임천(林泉)에 아담한 별장을 마련하여 소꿉놀이 텃밭을 가꾸며 재미있게 살면서 고향의 꿈을 달래는 인사를 보면 부럽기도 하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의 강....’을 노래 부르며 향수를 달랠 수도 있겠지만, 청정한 고향의 정서를 가질 수 없는 아파트 출생 원적(元籍)의 현세대들은 잦은 이사로 인해 고향을 상실하고 보면 심중에 애향심은 발아할 수 없으니, 이 어찌 예사로운 일일까. 객지에 나가 살더라도 본적을 못 바꾸게 하던 어른들의 고향 의식에는 불변의 애향심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며, 그 애향심은 또한 애국심의 모태가 될 수 있기에, 고향의 산야를 무너뜨리는 난개발은 신중(愼重)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하지장이 표현한 회향우서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을 노래한 불변의 애향심을 담은 명시(名詩)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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