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눈만 뜨면 온통 세상이 회색빛이어서 음울했다. 2024년 12·3 계엄 이후 정국 혼란으로 인한 불안 때문인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그럼에도 어느 사이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매화를 비롯, 벚꽃, 목련과 산수유가 피고지고 했다.    필자가 사는 이곳 호수 수변(水邊)에 늘어선 나무들도 온몸에 수액이 감돌기 시작했다. 겨우내 나목이었던 마른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자 꽃 진자리에 아기의 젖니 같은 연둣빛 새순이 일제히 앞 다퉈 잎을 터뜨린다. 이름 모를 새들 역시 아파트 화단에 날아들어 이른 새벽부터 청아한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다. 눈을 들어보면 먼 산하는 하루가 다르게 봄 색깔로 치장하느라 분주하다. 지금 한창 봄이 무르익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날이 갈수록 봄빛이 짙어지는 자연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연이 선사하는 현란한 봄 색채에 눈 멀미를 일으킬 정도다. 개나리는 어쩌면 이리도 노랑색을 띨 수가 있을까? 어디 이뿐인가. 4월 춘설에도 핏빛처럼 빨간 철쭉이 곳곳에 벙글고 있잖은가. 최근 기후 변화로 우박이 쏟아지고 찬비가 내리다 그치면 곧이어 눈발이 흩날렸다. 하지만 가끔 먹장구름 사이로 따순 봄 햇살이 잠시만 비추어도 철쭉은 이 틈을 놓칠세라 꽃잎을 피우느라 수선을 떨곤 한다. 이렇게 봄은 시샘하는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온갖 색깔로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이 때 문득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흥얼거려졌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위 노래 가사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입속으로 부르노라니 찬란한 춘색(春色) 이 유행가 한 곡조에도 오롯이 용해 됐다는 생각이다. 유행가는 문학의 시에서 표현하는 심상과는 다르게 시대가 지닌 유행과 풍속을 어느 정도 대변해 준다면 지나치려나. 지난날 우리 전통 복식 경우, 치마 색깔로선 연분홍이나 다홍색이 곧 그 시대 기호 색깔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유행 색깔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예로 1939년에 나온 이화자의 ‘어머님 전 상서’를 비롯하여 1953년도에 선을 보인 백설희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 ‘ 봄날은 간다’의 가사를 살펴보면 위 노래 속 여인들은 연분홍 치마를 착용했다.    반면 안다성 노래인 ‘에레나가 된 순희’(1959년)에서는 ‘에레나’로 이름을 바꾸기 전에는 ‘다홍 치마를 흩날리고 ’ 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자 노래 ‘진도 아리랑’(1966년)속 여인과 박재란이 부른 ‘박달재 사연’(1968년) 속 새악씨도 모두 다홍치마를 입었다. 이로보아 1930년대에서 1960년대 즈음에는 젊은 여성들이나 새색시들이 자주 입었던 치마 색깔은 연분홍이나 아님 다홍색이었나 보다. 이렇듯 비록 한 낱 유행가 가사이지만 그것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서 참으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여인들은 양장보다 품새 넓은 한복을 즐겨 입었다는 사실을 노래 말을 통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노래에 비친 당시 복식 색깔로서 분홍색, 혹은 붉은색을 꼽을 수 있어서다. 저고리와 댕기 경우를 살펴보면 이난영 노래 ‘해조곡’(1939년)에선 연분홍 저고리가 나오고, 박재란의 ‘박달재 사연’(1968년)과 패티 김이 부른 ‘연자마을 아가씨’(1968년)에선 붉은 댕기 가사가 등장한다. 유행가 가사가 품고 있는 색채들을 논하노라니 현대에는 그 때에 비하여 실로 엄청난 색채 감각의 변화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복식의 변모 때문 일 것이다. 올 봄엔 필자도 화사한 봄 색채를 심신(心身)에 덧입히련다. 몸과 마음으로 봄에 피어나는 꽃 색깔을 잠깐 흉내라도 내어본다면 그동안 잃어진 젊음을 다소 되찾을 수 있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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