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심리학자 에드가 루빈은 자신이 고안한 ‘루빈의 꽃병’ 그림을 통해 하나의 사물에서 다른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림의 안쪽 부분을 집중해 보면 꽃병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깥쪽 검은 부분에 시선을 모으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 나타난다. 시선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즉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부분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루빈의 꽃병은 인간의 인지 구조가 고정돼 있지 않고 매 순간마다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변덕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또한 종합적 판단을 하게 되면 꽃병과 두 사람의 얼굴이 전경이 되든 배경이 되든 순서대로 다 보인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에 앞서 무엇이 다른 가부터 분별하고 살펴봐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진다고 상대를 비난하면 적을 만들고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분별을 갖게 되면 친구가 된다 미국 디자이너 닉 데스비안스가 사람의 옆 모습을 본떠 3D 모델링을 통해 루빈의 꽃병을 완성했다. 이 꽃병은 정면에서 보면, 좌우 공간이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이 모습은 이를 만든 디자이너 자신(오른쪽)과 그의 아내(왼쪽)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꽃병을 둘러싼 공간을 통해 사람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네거티브 스페이스(음의 공간)라는 예술의 일종이다. 전국시대, 위나라의 재상 방총(龐蔥)은 태자와 함께 조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으로 인질로 가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그는 왕에게 찾아가 믿음과 의심에 관해 질문을 했다. 방총은 왕에게 시장 한복판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왕은 단호히 부정했다. 방총은 두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왕에게 물었다. 왕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쉽게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물었다.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이 말하면 사실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방총은 왕에게 인간 심리의 본질을 설명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 없지만,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믿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라고 했다. 연예인 팬덤은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인 귀스타브 르봉이 말한 ‘군중심리’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그는 군중을 같은 공간에 모인 무리가 아닌 특정 감정이나 신념에 따라 결합된 ‘심리적 군중’으로 본다. 예술계의 극성 팬덤보다 더 염려되는 건 정치권의 극성 팬덤이다. 나치의 히틀러는 이런 군중심리를 활용한 대표적인 선동가다. 독일인들은 최면이라도 걸린 듯 나치의 만행에 맹목적으로 동조했다. 이런 군중심리를 활용한 정치인들의 선동술은 지금도 여전하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응원에 그치지 않고 반대 세력에 대한 악마화 등 비이성적 행태가 난무한다. 보수·진보를 떠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이러한 극단적 정치적 팬덤은 ‘집단착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버드대의 토드 로즈 교수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결정인데도 다수의 선택을 따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집단착각의 위험성에 주목한다.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당파를 떠나 서로 친분을 유지하며 나라 걱정을 했던 우정의 표본으로 유명하다. 당쟁으로 정치적 의견 달랐을 때도 중립을 지켜 서로를 존중, 마지막까지 우정을 지킨 오성과 한음이 몹시 그립다. 그런 정치인을 언제나 만날 수 있을까? 최악의 산불로 인해 상처투성이로 얼룩진 봄이다. 건조하고 고온의 날씨에 설상가상으로 강풍이 불어 산천초목이 초토화되었다. 또한 정치계에도 커다란 산불이 발생하여 정국이 크게 소용돌이치며 극심하게 혼란스러웠던 봄이다.    정치계 산불은 야당이 먼저 불을 지르고, 대통령이 맞불을 놓아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산불이 되었다.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의 가슴이 시커멓게 탔다. 이제 산불 및 정치계 산불 예방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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