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대청소를 한다. 하루 날 잡아 정원수를 다듬고 잔디밭의 검불을 털어냈다. 이제 막 돋아나는 잡초도 하나하나 뽑았다. 언덕에 지은 집이라 정원이고 어디고 바람에 날려 온 쓰레기로 지저분했다.   대문간의 돌무더기를 정리하던 중, 호미 날 끝에 새끼손가락 정도의 나뭇가지가 보인다. 모나게 박혀 있던 것이 풀과 함께 딸려 왔다. 봄이면 밭 주인아저씨가 쥐불을 놓곤 하더니 타버린 가지 하나가 땅에 묻힌 듯 반들반들 흑색으로 빛난다.  오늘 아침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샤프심을 땅에 묻으면 다이아몬드가 된다!'라나 뭐라나? 피식 웃음이 났다. 샤프심은 흑연이다. 4월의 탄생석 다이아몬드와 똑같은 탄소의 결정체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었으리. 풀을 뽑아내면서 본 나뭇가지도 흑단처럼 까맣게 빛난다. 언제쯤 묻힌 건지 몰라도 문제의 밭은 5년 전까지는 무성한 덤불이었다. 그것을 개간했으니 길게 잡아도 5년 안팎일 텐데 흑연처럼 꽤나 짙은 빛깔이다.  샤프심을 묻을 동안의 환상은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런데도 단순히 유머로만 볼 수 없는 기분이다.   다이아몬드가 되려면 우선 120km 남짓 되는 땅속에 묻혀야 했다. 까마득한 깊이는 물론 엄청난 고온과 압력에서 오랜 날 견디게 된다. 줄잡아도 수 천 년 남짓 걸린다.   기적적으로 묻었다 한들 아득히 먼 미래의 후손이 아니면 캐내기 힘들다. 보석 중의 최고봉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사실과 덧붙여 그럴듯한 상상을 했을 테지.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면서 갖고 싶을 정도로 희귀한 보석이기는 했다. 참고로 지금까지 경매 전시된 것 중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받은'핑크스타'다이아몬드는 8,300만$라고 한다. 1$ 한화 현재 시가 기준으로 918억 가량이다. 무게라야 59.60캐럿(11.92g)인 걸 보면 엄청난 금액이다.   1캐럿은 0.2g이며, 커피콩처럼 생긴 인도의 캐럽 나무 씨앗을 저울 양쪽에 놓고 수평을 맞춘다. 바로 그 씨앗의 숫자로 무게를 측정했는데 오죽 여자들의 로망이었으면 샤프심을 묻어서 꺼낸다고까지 했을까.  '다이아몬드는'정복할 수 없다'라는 뜻 아마다스(Adamas)에서 유래했다. 독특한 광채와 높은 굴절률 때문에'신의 눈물'또는'하늘에서 떨어진 별 조각'으로 알려졌으나 원자기호는 흑연과 동일한 탄소(C)이다. 시꺼먼 흑연과 보석의 여왕 다이아몬드의 본질이 똑같다니. 커팅할 때도 58개 면으로 자르기 때문에 빛을 뿜는데 구성 원자가 일치한다고?  특별히 고온과 고압을 견디느냐의 문제로 양질의 다이아몬드가 결정된다. 희귀한 보석이 된 것도 천문학적 가격보다는 완성되기까지의 과정 때문이었을 거다.   땅속 깊이 뜨거운 온도와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 속에서 치밀하게 결합된 탄소 원자는 햇빛보다 강한 투과력 때문에 눈부신 광채를 발한다. 깊은 땅속에서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싶지만 다이아몬드 원석은 뜨거운 마그마 속에서 영롱한 빛깔로 태어나기만 기다렸으리.  아무리 봐도 단순히 보석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뭔가가 있을 듯하다. 그 가치는 누가 뭐래도 투명성과 순수성이었으므로. 우선은 다른 물질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   결혼예물로 많이 알려진 것도 고귀한 사랑과 영원불멸의 상징 때문이었으리. 현란한 광채는 물론 던지고 깨뜨려도 탈 없이 멀쩡하다. 보석이라면 강도가 약해서 다루기 힘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보석 중에서도 다이아몬드는 또 화려한 줄만 알았는데 금속을 자르는 절삭기로 이용될 만치 경도를 자랑한다.  어떻게 그처럼 단단한 보석이 될 수 있었을까. 탄소 원자는 4개의 결합이 최우선이다. 다이아몬드는 조건대로 4개가 빈틈없이 맞춰져 있다. 다른 원자가 끼어들 수 없고 결코 깨지지 않는데 흑연은 3개로만 연결되었다.   본질은 같아도 반드시 4개라야 되는 조건 때문에 하나는 보석의 왕으로, 또 하나는 흔히 보는 연필심이 되었다.  그 위에 다이아몬드는 빛이 파고들지 못해서 투명한 빛깔이고, 흑연은 틈새로 빛이 들어오면서 검게 변한다. 3개는 물론 남은 하나까지 철두철미 완벽해질 때라야 최고의 보석이듯 최고의 가치관을 지향할 때라야 삶을 말할 수 있다.  부의 축적보다는 정신적 추구가 우선이어야 하리. 흑연이건 다이아몬드건 똑같이 탄소였던 것처럼 똑같은 어려움이고 시련인데 다이아몬드 인생이 되고 흑연 같은 인생으로도 끝난다. 보석과 연필심의 차이는 단순했지만 견디는 모습에 따라 천양지차로 바뀐다.   나는 과연 다이아몬드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흑연 같은 삶도 본질은 다를 게 없지만 얼마나 더 견디느냐가 관건이다. 지금은 흑연처럼 부서져도 내일이 있다. 흑연 또한 필요한 광물이지되, 원소가 동일하기 때문에 가끔 그렇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참 아름다운 보석이었건만 사치로만 여기고 관심 두지 않았다. 비가 오면 뜨락의 물방울 보석이 더 찬란하게 보였다. 햇빛을 받아 이파리 구를 때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충분했다.   고작 다이아몬드보다는 투명한 이슬이 더 환상적이었는데 형성 과정을 보니 그 가치는 절대 깨지지 않는 강도 때문이었다. 예쁘고 화려한 것도 보석 중에 으뜸이다. 귀하고 값비싼 보석 이전에 눈물겨운 과정을 적용하면 천문학적인 가격도 수긍이 된다.  다이아몬드 고향은 캄캄한 땅속이었으니까. 눈부시게 찬란한 환상과는 달리 들끓는 압력 고온에 시달려 왔다. 우리들 인생 고향도 꽃 피고 새 우는 언덕이 아닌 자갈밭 황무지였다. 참고 견디는 동안 다이아몬드 꿈도 수없이 무너졌지만 포기하면 흑연이 되고 마침내 견디면 소망을 이룬다.   흑연도 언젠가는 다이아몬드가 될 테니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한 끗발이다. 까다로운 인생 방정식도 금방 풀리는 느낌이다. 우리 살 동안의 최고 이념도 어쨌든 참고 견디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은 나온 것 같다. 엄청난 압력과 열을 받아 보석의 여왕이 된 것처럼 행복의 무지개는 암흑과 시련의 골짜기에서 뜬다. 연필심 같은 나뭇가지를 보고 잠깐 환상에서 깨어나니 딴에는 수수롭다.   내 인생 다이아몬드를 위해서는 더 많이 힘들고 참아야 하리. 제아무리 어려움도 그럴수록 정교하고 치밀한 보석으로 태어날 것을 다짐해 본다. 봄 교향곡 들리는 산자락 언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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