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관계는 묘하다. 매일같이 만나던 사람과 늘 만나고 아는 사람과 상종하며 낯선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어색한 생각을 느끼게 된다. 어쩌다 낯선 사람에게 전화만 와도 신경이 쓰이고 찾는 이유부터 먼저 물어본다. 생소한 얘기가 아니고 듣던 얘기, 아는 얘기면 안도를 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낯선 사람이면 서로가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고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바쁜 일도 멈추고 정을 듬뿍 쏟는다. 서양사람들은 서로가 알지 못하는 사이라도 지나치면서 미소를 짓거나 간단한 인사정도는 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이요, 상식으로 여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자와 깊은 뜻을 지닌 ‘연고’란 말은 가문이나 혈통·정분 또는 법률상으로 맺어진 관계를 말하며 무슨 사유이던 아주 절친한 사이를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연고권(緣故權)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귀속재산을 임대하거나 권리권을 가진 사람이 국가가 그 귀속재산을 불하할 때 우선적으로 불하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리고 연고자란 말은 연고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예부터 유목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씨족사회화 되어 한 곳에 정착하면서부터 서로 인연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변해 버렸다. 지역단위로 마을이 형성되자 인간의 관계가 좁아지고 가까운 부락과 직장관계·혼사관계가 우리의 생활 테두리를 협소화 시켰다. 그래서 무슨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는 사람을 찾아 부탁을 하고 협조를 구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아직도 선거 때나 관직을 임명할 때 상당히 작용하는 것도 다 그런 연유이다. 지금도 고관대작을 임명할 때 상당히 참조하고 경계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맥·혈맥·학맥이 존재하고 있는 한 연고주의는 사라지기 힘든 악제이다. 이러한 인맥은 좀처럼 끊을 수 없는 타성에 젖은 인습이라 전혀 무시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고위 공직자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권력의 한 부분을 인용하거나 나누어 가진 특권의 사례가 종종 있었다. 그 일을 막는 일은 쉽지 않지만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에 아픔의 결단이 필요하다. 퇴계 선생은 지방 군수로 임명되었을 때 가족을 버리고 혼자 부임했다고 한다. 자기가 군수이지 가족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식구를 데리고 가서 가난한 고을 살림을 축낸다는 것은 생각할 문제로 여긴 듯하다. 자신의 처신은 물론이요 주변의 인연을 잘 다스리는 것도 이 시대에는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이제는 선진국 연고주의를 지향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다. 아는 사람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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