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주의는 다시 득세를 할 것인가. 노르웨이 청년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의 폭탄테러와 무차별 총기난사사건은 노벨 평화상의 나라, 글로벌 평화지수 1위인 노르웨이를 공포로 몰아 넣었을 뿐만 아니라 극우주의에 대한 경게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범행이 우발적이 아니라 오랜 기간 계획한 범죄인데다 그가 남긴 글이 극우적 성향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범행 후 유럽의 네오 파시스트와 신나치주의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브레이빅이 던져주는 메시지에 유의한다는 반응이다. 유럽은 근래 들어 극우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그들의 압력에 못이긴 국가들의 우향우 성향도 만만찮다. 독일에서는 약 2만여명의 극우주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들이 저지른 반인종적 범죄도 연간 2만여건에 달한다. 러시아의 모스코바에도 20개가 넘는 스킨테드단체가 활약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특히 무슬렘에 대한 거부는 두드러진다. 독일은 ‘우리의 다문화정책은 실패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인종문제에 직면해 있다. 영국은 “무슬렘에 대한 재정지원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으며 프랑스도 “이대로라면 다양한 인종의 공존을 원치 않는다”며 무슬렘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벨기에도 프랑스에 이어 무슬렘여성들의 특수복장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는 등 지금 유럽은 극우주의에 뒤덮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테러가 기독교 원리주의 극우세력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제 유럽에서 더 이상 톨레랑스(다른 종교와 신념에 대한 관용)는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유럽의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섣부른 진단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이번 총기사건은 극우에 대한 깊은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 극우주의를 정의한 것을 보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국수주의적 성격을 띄는 신념’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민족과 국가를 우선으로 하는 신념도 극우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자민족 우월주의에 빠졌던 나치와 파시스트, 일본의 군국주의는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극단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종교적 신념으로 테러를 일삼는 무슬렘의 극단주의자들도 같은 범주에 넣고 있으며 네오파시스트와 신나치는 이에 반하는 극우세력이라 할 만 하다. 주목을 끄는 것은 브레이빅이 한국을 유럽식 다문화주의를 배격하는 모범국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인종차별적 정책과 다문화에 대한 배타성에는 모범국”이라고 했다. 서방의 눈에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우익은 그런 다문화와 민족문제에 관한한 아직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해방 후 혼란기에 극우가 테러를 감행한 적은 간혹 있었으나 지금은 테러와는 무관하다. 1982년 의령의 궁유면에서 우범곤이라는 순경이 카빈과 수류탄으로 무차별 살인극을 벌여 90명의 사상자를 냈으나 전혀 개인적 동기였을 뿐이었다. 우리나라는 지금 다문화국가로의 급속한 이행단계에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나 국가적 기조는 이들을 우리의 건전한 사회적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화도 수용하자는 흐름이다. 다만 다문화 이민자들로부터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는 유럽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유럽의 극우에 편승한 일본 우익의 군국주의 부활 획책이다. 일본의 극우주의는 그들이 전범인 세계2차대전을 미화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당연시 한다. 독도문제와 교과서 문제에 강경하고 전쟁 가해국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아직도 일본내 한국인들의 지위가 차별적인 것은 그들의 극우성향에서 비롯됐다 할 것이다. 브레이빅은 우리에게 유럽식 실패를 답습하지 말라는 교훈을 던져줬다. 바깥의 시선이 극우적이라는 점도 알려줬다. 무엇보다 일본 극우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됐다. 지금의 다문화 포용을 더욱 심화시켜 국수적 성향을 완화시켜야 한다는 자성도 갖게 했다. 그러나 극우주의자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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