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야당의원, 극우파 신도일행의 울릉도 방문시도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9시간만에 되돌아가고 말았지만 그 파장은 쉽게 수그러 들지 않고 있다. 일본은 곧이어 발표한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는 억지를 반복하고 있다. 신도일행의 방한소식이 전해진 후 서울의 일본대사관과 김포공항, 포항 여객선부두, 울릉도 현지에서의 규탄대회가 이어졌고 현역장관은 독도에서 해양경비대 복장으로 그들의 독도방문을 막겠다고 나섰다. 주기적으로, 아니면 잊을만하면 도발하는 일본이다. 그러나 이번 우리정부의 대응은 강경하고 단호했다. 입국거부였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일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한때 우리문화를 수입, 국가번영을 꾀한 나라다. 명치유신으로 서양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일찍 개화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 된 나라로 참담함을 맛보기도 했다. 한국전쟁으로 재기에 성공해 지금의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세계인들은 그들을 부지런하고 친절하며 검소하고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동물이라는 인식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가장 큰 아픔은 전쟁을 일어킨 전범국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국부를 영토 확장에 사용, 동양공영이라는 미명아래 침략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자국의 젊은이와 동남아국 젊은 피를 희생시켰다. 지금도 그 상처는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 각 지역에 아픈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런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아직도 말끔히 청산하지는 못했다. 전쟁피해에 대한 보상이 그러하고 상황의 인식에서 그러하다. 일본은 개인적으로는 겸손, 친절, 정직하지만 단체가 되거나 국가적 이슈에 직면하면 돌변하는 양면성을 지녔다. 그들은 아직도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전쟁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으며 피해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신도의원 일행의 행동도 그러한 일본적 정서를 자극하고 일본내 극우세력의 규합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신도의원의 배후에는 3천개가 넘는 극우조직이 있다는 보도가 현실을 입증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은 아직도 극단적인 국수주의와 자민족 우월주의에 빠져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반 한류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후지TV가 한류를 방영한다하여 후지TV안보기 캠페인을 벌이자는 운동이 트위터를 통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국내에 일고 있는 거대한 한류에 그들도 두려움을 느낀 것은 아닐까. 아니면 국가의 문화점염을 염려한 소인배적 우월주의, 국수주의적 발로는 아닐지. 일본내의 한류가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린다는 피해의식의 발로인지. 모두가 일리가 있는 추측이다. 한류를 받아들여 대국다운 모습을 보이고 일본문화의 새로운 발전계기로 삼겠다면 그같은 움직임은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후지TV 안보기 운동은 그만큼 한류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도도한 문화의 물결을 억지로 멈출 수는 없다. 서울거리에 넘쳐흐르는 일본관광객과 한국을 즐기는 음식문화는 흐름이다. 일본과 한국이 동화되어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문화적 동화는 일본이 시도했던 물리적 통합과는 다른 힘이 있다. 그 속에 감동과 히스토리가 담긴다. 아마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류도 강제하지 않을 까. 그것이 일본이다. 국수주의와 극우이다. 한일간의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은 일본대지진 이후가 아닐까. 그들의 아픔에 대한 우리국민의 태도는 우리가 놀랄 정도로 대범하고 신속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속하게 현장에 달려가고 성금을 모았다. 전대미문의 성금이 걷혔다. 아무도 옛날 관동대지진때의 한인대학살을 들먹이지 않았다. 오직 그들이 입은 재해에 대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힘껏 도왔다. 순수한 인류애의 발로였다. 우리는 지금도 일본의 엄청난 재해에 대해 걱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교과서에 뭐라고 썼던 독도문제로 도발해오든, 재해에 대한 인류애는 한결같다. 아량이 생기고 베푸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일본을 이웃으로 본 것이다. 그것이 우리와 일본의 다른 점이다. 아직도 방사선누출에 대해선 거짓말을 하고 이웃의 도움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대국이지만 대국답지 않은 그들의 국민성이자 근성이다. 우리는 산도의원과 그 일행, 김포공항에서 비빔밥 먹고 김쇼핑한 그들 뒤엔 ‘일본회의’라는 커다란 극우조직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그레이빅이 유럽에 니치즘과 네오파시즘에 대한 경각심을 안겨 줬다면 신도일행은 우리에게 일본극우 군국주의 대한 경각심은 일깨워 주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우리는 독도와 교과서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극우와 국수주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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