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피해자를 보상하는데 국민성금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박재완기재부장관의 발언은 과연 그의 상황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국정조사에 나선 국회의원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귀를 의심해봤지만 분명 기재부장관의 발언이었다. “달리 대안이 없어서...”라는 궁색한 변명이 뒤따랐지만 청문회를 보고 있던 국민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금융기관의 재산과 국민들이 맡긴 예금을 자신의 주머니돈으로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끄집어내 낭비한 몇몇 저축은행 주주들과 꼽사리 끼어 부스러기돈을 얻어먹은 자들을 위해 국민이 성금을 내어 뒷수습을 하자는 발상은 정말 기상천외하다. 박장관의 의식 속에는 ‘국민은 봉’이라는 잠재의식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우리나라만큼 국민성금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설, 추석은 기본이고 연말과 풍수해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성금을 거둔다. 심지어 방송매체들은 주말마다 프로그램을 통해 성금을 거두고 있어 이제는 성금이 일상화되었다. 정많고 이웃을 사랑하는 인보정신이 몸에 배어있는 우리국민은 이같은 성금문화에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제는 준조세적 성격마저 띄고 있지만 성금에 관대하고 적극적인 것은 나보다 불우하거나, 어려운 사람, 일시적인 자연재해로 오갈데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유용하게 쓰는 것이 성금이라는 공감대가 있어 우리의 이웃사랑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일본이 대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우리국민은 자연발생적으로 성금 모으기에 나서 이웃나라의 아픔을 달래는 인보정신을 발휘했다. 그러나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국민성금으로 보상한다면 이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 국가가 미처 돌보지 못하고 있는 소외된 곳이 널브러져 있다. 저축의 성격으로 돈을 맡긴 사람과 그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윳돈을 가진 사람과 하루하루가 급한 사람들과의 차이이다. 따라서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그들의 은닉된 재산을 환수하고 국회는 진상을 철저히 밝혀 정부의 대책을 끌어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이나 국고로 보상하는 것은 재산환수와 은닉재산, 해외투자의 회수이후에 생각해볼 문제이다. 차제에 사유화 되어 있는 저축은행의 제도적 단점을 보완해 근절되지 않는 비리를 원천봉쇄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저축은행 사태가 정치논리로 변질되어 가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야는 과거 정권에서 생긴 일이라는 주장과 이 정권이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는 책임공방이 뜨겁다. 불똥이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선거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판이다. 대통령마저 지지부진한 수사를 지적하고 나선 것을 보면 저축은행 사태는 의혹만 부풀린 채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다.다만 이번에도 엄청난 국고가 투입될 것이 뻔하다. 정부는 저축은행에 대한 수사의지와 사후대책을 뚜렷히 밝혀야 한다. 차제에 국민성금에 대한 원칙도 확실하게 마련해 국민들의 의혹을 불식시켜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코묻은 저금통의 의미를 더럽히고 순수한 애린정신을 짓밟는 성금문화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모금에 신중하고 사후 돈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박장관처럼 국가예산을 쓰기엔 그렇고 달리 자금조달 방법이 없으니 자금조달하기 쉽고 뒷탈 적은 성금을 모으자는 발상은 없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세치 혀’, ‘가증스러운 발언’운운하면서 질타한 것도 장관의 발상에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성금의 순수한 의미를 훼손한데 분노한 것이다. 이쯤에서 국가정책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장관과 각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왜 경륜과 해박한 지식, 가치관과 실천능력이 그들의 덕목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분명 저축은행의 해법으로 국민성금 운운하는 것은 하수 중에도 하수이다. 어쩌면 수에 미치지도 못하는 단견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귀열고 여론을 수렴하는 자기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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