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풍요의 꿈이 여물어 가는 계절이다. 등이 휘도록 바쁜 6, 7월 농번기를 지나 8월에 접어들면 농부들은 벌써 추수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부푼다. 한해 농사도 얼추 8월이면 대세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한여름 뙤약볕을 ‘건들 8월’이니 ‘둥둥 8월’이라며 용케 참아내는 것도 수확이라는 풍성한 뒤끝이 있기 때문이다. 릴케가 그의 시 ‘가을날’에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한 것도 오곡백과가 단맛을 더해가는 지금쯤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여름은 릴케가 노래한 ‘위대한 여름’은 아닌성 싶다. 처서가 눈앞이고 보면 여름도 어느듯 끝자락에 왔으나 풍요를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8월의 위대한 햇볕은 일찍 찾아온 지루한 장마와 태풍, 시도 때도 없는 국지성 집중호우에 가려 모습을 감추었다. 맑은 날보다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아 일조량은 예년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강수량은 평년에 견줘 두배 이상 많아 과채류가 제대로 영글기 전에 짓물러 버리거나 낙과현상을 보이고 있다. 장마도 끝난 것 같더니 가을장마라 해서 흐리고 비오는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추석 차례상 비용이 예년보다 20%이상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은 기후조건의 변화로 인한 농사의 작황부진과 무관치 않다. 그로인해 소비자 물가는 억제선인 4%이상 올라 정부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모두가 기상이변에서 온 후유증이다. 우리나라의 기상은 오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에 의해 좌우된다. 겨울이면 오츠크해 기단이 남쪽으로 세력을 뻗혀 차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여름에는 덥고 다습한 북태평양기단이 한반도를 뒤덮는다. 그러나 올해는 북태평양기단이 한반도에 이르러 더 이상 세력을 확장 못하고 오츠크기단과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지루한 장마가 계속됐으며 엄청난 비를 뿌렸다. 대치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맑은 날이 별로 없고 한랭한 날씨가 계속되는가 하면 곧 비가 오는 날씨로 변했다. 일조량은 지난 7월1일부터 8월10일까지를 기준으로 예년보다 70시간이상 적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등숙기인 8월의 일조량은 작황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나락이 패기 시작했으나 잎짚무늬마름병과 흰등멸구, 잎도열병이 늘어나고 있고 밭작물은 습기로 인해 뿌리와 열매에 역병이 창궐하고 있다. 도열병은 출수기 이삭에 번질 경우 백수현상으로 불임벼포기가 크게 늘어난다. 과채류는 열매가 영글지 않고 낙과하고 짓물러져 상품가치를 잃는다. 우리나라의 쌀생산량은 지난 88년 4천2백만 섬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쌀 생산은 경작면적 감소 등으로 해마다 줄어들어 이제는 3천만 섬을 겨우 웃돌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농사가 국민총생산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쌀도 농사가 여의치 않아도 재고량이 1천5백만 섬에 이르고 보면 가격조절이 가능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접적인 영향으로 시장이 흔들린다. 과채류와 장바구니 물가로 서민경제가 흔들리고 물가가 제어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보유농산물로 출하조절을 해도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우리는 배추값 파동에서 절실하게 경험했다. 농사는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만 국민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요인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잦은 기상변화와 이로 인한 농산물의 가격변동, FTA 이후의 농산물의 국제시장 변화,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이제는 농산물도 가격조절과 충격흡수를 위한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이다. 획기적인 물량비축 시스템의 확보와 해외경작면적 확대, 조절기능의 강화, 식량안보와 연계한 세계 식량시장에의 진출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은 아무 것도 자급되는 것이 없다. 안으로는 오호츠크기단과 북태평양기단의 세력싸움에 휘둘리고 넓게는 메이저급 식량메이저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도 당장 농산물은 기상에 쪽을 못펴고 있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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