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들판을 바라보면서 지난 시간의 인고를 회상한다. 유달리 많았던 강수량과 이상 기온으로 가슴 졸이고 병들어 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면서 절망했던 고통의 나날이었다. 다행히 큰 태풍피해 없이 황숙기 많은 일조량으로 곡식은 여물어 가고 있다. 그러나 올 쌀농사는 예년보다는 작황이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다. 해마다 재배면적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나라 쌀자급량은 1990년 108.3%에서 해마다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98%까지 떨어졌다. 올해는 그보다 줄어들어 머잖아 쌀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황금물결을 보면서도 가슴이 무거운 것은 그러한 흐름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물가는 유류와 함께 식료품이 주도해왔다. 배추, 고추, 상추 등 소위 말하는 ‘3대 금추’는 개별가격으로 보면 물가상승에 차지하는 비율이 극히 미미하지만 그로인해 식료품가격은 10%에 육박하는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식료품이 전체물가를 주도해 국가의 경제기조를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면 작황부진과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석유류가 중동의 산유국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고 그들의 의지에 따라 수입국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식량자원도 우리처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는 식량메이저들의 손에 국가경제가 좌우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을 살펴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옥수수의 자급율은 지난해 기준,8.4%에 불과하다. 지난해 857만톤을 수입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콩은 더욱 심각하다. 자급률 0.5%에 445만 8천톤이 수입됐다. 우리가 먹는 콩제품이 거의 모두 수입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밀도 자급률 1%, 보리는 41.1%에 그치고 있다. 건강식단으로 권장하고 있는 오곡밥과 잡곡밥은 쌀에 첨가되는 잡곡이 쌀보다 훨씬 비싸 가계를 흔든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토불이를 외치고 우리 것을 신봉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밥상도 수입산에 점령당한지 오래됐다. 농촌에서도 수수와 기장, 밀, 좁쌀은 구경하기 힘든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경남하동에서 열리고 있는 코스모스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선 넓은 들판의 논에 코스모스와 메밀을 심어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언제 우리가 벼가 자라야 할 논에 꽃을 심어 축제를 벌일 정도로 풍족해졌는가하는 걱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에 전량 수입하는 사료작물을 심거나 비싼 값으로 사먹는 수수나 기장, 옥수수, 좁쌀 등을 심는다면 어떨까? 축제도 그런 대체작물을 주제로 연다면 시너지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미래의 아이콘이 될 식물종자를 확대하는 시험포로 활용한다면 세계가 자원화에 힘스고 있는 종자원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텐데.… 미국은 당초 불과 몇 종류의 종자자원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65만종의 종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각국에서 채집해 들여온 종자를 육종, 교잡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레로 콩은 우리나라에서 3,500여종을 가져가 지금은 4,451종으로 늘렸다. 원산지인 우리는 되레 미국에서 콩을 사다먹는 수입국이 된 것이다. “밥상을 내주면 목숨을 내주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으나 우리는 이미 밥상을 내준 형국이다. 요즘은 인도에서도 농민들에게 토종종자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다고 한다. 유휴지를 활용, 종자자원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종을 확산시켜 자원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료작물마저 전량 수입하는 우리는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벼농사 직불금제를 폐지하고 유휴농지를 강제 경작토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곳에 토종종자의 시험포를 만들어 종자자원을 확대하고 쌀보다 비싸고 농촌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잡곡을 심어 밥상주권을 되찾아야 한다. 식품류로 인한 물가충격을 줄일 수 있는 대체작목의 경작지로 활용해야 한다. 수확을 앞둔 들판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지금 우리 농업에 대한 정책이 무책이라는 시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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