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지금 누가 박수쳤어?” 18일 국회문방위 국감장에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한 가수 유열씨는 탈랜트 출신 최종원의원으로부터 호통을 들었다. 사태의 발단은 진재희 문방위원장이 참석한 국무위원에게 ‘...님’이라는 호칭을 붙인데서 비롯됐다. 이에 전병헌의원이 “절치 않다”며 이의를 달고 나섰고 진위원장은 “나는 견해가 다르다”며 “상호 존중하자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이 순간 가수 유열은 자신도 모르게 진위원장의 뜻에 공감한다는 의사를 박수로 화답한 것이다. 국회는 관행상 회의도중 의원의 발언이나 국무위원, 참고인의 발언에 박수를 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국무총리를 비롯한 모든 국무위원에게 직함을 부르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총리, 나오시오” “증인은 예, 아니오로만 답하시오”라는 언행이 그것이다. 이날 외교통상부 국감장에서도 ‘반말 국감’이 벌어져 곧바로 장안에 회자되었다. 정몽준의원이 김성환 외교장관에게 내년 총선기간중 국제회의개최에 대해 “그게 무슨 궤변이야” “상식에 맞는 얘기야?”라며 반말공세를 펴 듣는 이들이 불쾌감을 금치 못했다. 국정감사나 청문회, 본회의등 국회가 열릴 때마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국회의 고압적 자세는 국민들을 식상케 한다. 큰소리, 된소리, 호통이 난무하고 국무위원들은 고양이 앞의 쥐가 된다. 국회의원의 호통과 일방적 몰아붙이기에도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당하기 일쑤다. 어쩌다 맞대응해 눈이라도 부라리고 고성을 질렀다간 국민의 대표에게 대하는 자세가 오만불손하다 하여 사과를 해야 한다. 국회의 고압적 자세는 검찰이 피의자를 다루는 자세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때로는 국회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면서 구태여 저렇게 해야만 권위가 서는 것일까? 하는 해이감이 들때가 많다. “지금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어요”라며 다그치는 국회의원을 보면서 국민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아마도 전전긍긍하는 국무위원에게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호통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저렇게 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야말로 지켜보는 국민은 논리로 ,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한 어조로, 엄중하게, 충분한 자료로 권위를 유지하길 바랄 것이다. 호통과 큰소리, 반말이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회를 천격화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쓰는 언어는 생소하다.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는 쓸 수 없는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상생활에서 그들처럼 고압적이고 권위적으로 언어생활을 영위한다면 누구에게나 외면 당하고 말 것이다. 그들만의 언어는 더 이상 권위와 품위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이번 국감에서도 수많은 언어적 유희와 언어폭력이 양산될 것이다. 발언마다 “국민의 이름으로”라며 진정한 국민들의 바람을 호도하고 몰아붙이고 궤변을 일삼는 그래서 점차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추석연휴를 통해 국회의원들은 들끓는 민심을 확인했을 것이다. 정쟁에만 매몰되어 있는 현실정치에 대한 질책, 솟구치는 물가는 아랑곳 않고 민생을 외면한 국회, 여야 모두에게 등돌린 민심을 보았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선 언어습관부터 달라져야 한다. 국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저질적 요소를 제거하는 자정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TV 중개카메라가 보이면 의원들의 발언은 강경해지고 언어는 거칠어진다는 것은 올바른 국회의 모습이 아니다. 더 이상 자신들만의 언어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야 한다. 우리사회가 모두 급속도로 진화하고 격을 갖추어 가 는데 유독 국회만이 그들만의 도그마에 갖혀 있다는 따가운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국회도 서로 존중하고 박수치며 희망을 보여주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품위 있고 정중한 지적이 곧바로 국정에 반영되고 그런 진화되는 모습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국회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국회의원들의 언어습관의 변화이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들만의 언어에서 벗어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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