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보다 힘든 농삿일로 시름겨웠던 농민들이 황금들판을 바라보며 수확의 기쁨에 젖어들기도 전에 또다시 고통이 겹치고 있다. 올 쌀수매가가 물가상승률이나 생산비 증가에도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내 미곡종합처리장(RPC)은 최근 보유쌀을 포대당 원가보다 3,000원이 싼 값으로 집중 판매하고 있다. 경북도는 뒤늦게 쌀소비운동본부를 설치하고 도내 각 요식업체와 공공기관, 대량소비기관을 대상으로 쌀소비운동을 벌이고 있다. 햅쌀 수매를 코앞에 두고 벌인 뒷북치기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뒷북치기는 시장의 쌀값에 영향을 미쳐 지난 7월이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이는 곧 2011년산 쌀수매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 분명하다. 경남에선 벌써부터 농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고 전국적으로는 오는 10월 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경남농협은 7월부터 RPC쌀을 3% 인하해 집중출하한데 이어 최근에는 쌀수매 우선지급금에 집중출하로 값이 내린 시장가를 반영, 40kg들이 한포대에 지난해보다 2,000원이 오른 4만7천원에 수매키로 했다. 이같은 우선지급금을 두고 농민단체들은 쌀 1kg에 1,175원꼴로 이는 김밥 한줄, 컵라면 1개에도 못미치는 가격대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북도는 한술 더 떠 포대당 3,000원씩 인하해 집중출하, 창고비우기에 나서고 있다. 하필이면 벼수확기와 수매시기에 맞춰 쌀값을 떨어뜨리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이 가는 것이다. 내린 쌀값을 수매가에 반영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 농민들의 반응이다. 또한 평소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쌀을 수매할 시기에 와서야 부랴부랴 쌀소비운동을 펼치는 것도 농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처사이다. 도민들이 쌀소비를 해주지 않으면 올 쌀수매량이 줄어들 수 있고 비축미는 재고로 남아 나쁜 이미지의 ‘정부미’가 된다는 고위공무원의 인식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해마다 이맘때면 반복되는 살 수매가에 대한 농민들의 집단행동은 올해도 예외는 아닐듯 싶다. 때마침 국회는 한미 FTA협정비준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정부도 미국의 비준일정과 맞춰 이번 회기중 통과되길 기대하고 있는 미묘한 싯점이어서 농민들의 집단시위는 더욱 민감해질 공산이 크다. 농정의 정책부재가 농민들의 영농의욕을 꺾고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연례행사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쯤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처방이 나와야 할 싯점이다.
수매가에 대한 농민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예측가능한 영농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급선무다. 수매가에 물가상승과 영농비를 반영해 납득할만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농민과 정부, 소비자간의 협의체제를 갖춰 갸격상하한제를 도입하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이다. 농산물 국가수매체제를 유지해 농민들의 안정적 수입을 보장해 달라는 것도 그들의 주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쌀값은 정책논리에 의한 인위적 가격지지를 형성해왔다고 봐야 한다. 쌀값이 모든 물가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시책에 따른 정책이었다. WTO체제나 FTA에 대처하기 위해선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할 시기가 왔지만 쌀농사는 여전히 특별하다. 우리나라에 있어 쌀농사는 단순히 쌀을 생산하는 그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논이 습지역할을 해 기후를 안정시키고 많은 량의 물을 가두어 홍수조절 역할을 한다. 연로한 노인들이 생의 의욕을 갖고 고향을 지키는 이유다. 논농사를 보호하고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농민들이 논농사를 계속할 수 있는 기반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인 것이다. 쌀직불금제를 더욱 강화해 생산량을 조절, 가격안정을 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논을 놀리는 것은 식량안보나 국가자원의 낭비라는 측면에서 재고해야 한다. 직불금을 탄 농민들이 논에 사료작물이나 잡곡등 기타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농지활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뒷북행정이지만 지금이라도 쌀소비에 적극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 쌀로 술을 빚고 국수를 뽑고 떡을 만들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시급한 것은 농민들이 거리에 나서는 것을 막는 대책이다.
변 린 (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