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독일(당시 서독)에 있을 때 복잡한 시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언니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나왔다고 전화가 왔다. 40여년 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돈 벌기 위해 서독으로 갔던 그녀는 병원에서 근무했고 결국은 독일남자를 만나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독일에 2년 조금 넘게 있는 동안 그 언니는 마치 친동생처럼 나를 보살펴줬다. 십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전혀 만날 기회도 없이 지내다가 독일에서 만난 그녀와는 거의 매주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가깝게 지냈다. 독일을 떠나온지도 20년이 넘었지만 그 언니는 일 년에 한 두번 꼭 전화하여 안부를 물었다. 유난히 고국을 그리워하며 고향에 있는 가족생각으로 자주 눈물도 보였던 그녀는 이제 나이 육십이 넘었고 나 역시 더 이상 서른의 젊은 아기엄마가 아니었다. 대구역에서 만난 그녀와 함께 40년 전 내가 살았던 집과 중.고등학교 등교길이었던 약령시 골목길, 유치원을 다녔던 100년 넘는 계산성당, 이상화, 서상돈 고택 등을 다니며 나의 옛 홈그라운드를 자랑했다. 골목길 안의 작은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기와 차 전문 가게에 들려 차도 마시면서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어느 작은 공예점에서 자게장롱을 보고 너무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며 언니는 좋아했다. 그 옛날에는 약령시의 한약제 냄새를 피해 다녔건만 지금은 향긋하고 정겹게 코끝에 다가왔다. 40여년 전 그녀가 독일에서 번 돈을 고스란히 고향집으로 송금하여 동생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몇 년이 지나 작은 건물까지 살 수 있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런 분들로 인해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말자 내가 뭘 사 먹었는지 아니?’ ‘짜장면?’ ‘아니, 붕어빵! 천원에 3마리를 주더라!’ 가슴 깊이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고독을 묵묵히 이겨낸 그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옛 모습을 그나마 엿볼 수 있는 시장이나, 골목길, 그리고 붕어빵이 제일 반가울 뿐이었다. 세계 곳곳에는 이렇게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숨은 주역들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최윤희 구미1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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