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내곡동사저 계획이 백지로 돌아갈 것 같다. 대통령 경호실장마저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뜻을 밝혔다고 한다. 부지를 아들명의로 구입한 것과 사저로 쓰기에는 너무 넓다는등 곱지않은 시선이 부담이 됐던 것이다. 대통령이 부르짖는 공정사회라는 시대정신에도 맞지않다는 이유로 여당에서도 문제 삼았던 일이다. 공정사회라는 잣대는 우리가 그동안 용인하거나 인내해왔던 많은 부문에 새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것은 정치뿐만아니라 경제, 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새질서를 찾아나서는 잣대가 되고 있다. 17일 열린 요식업자들의 카드수수료에 대한 항의집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카드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졌던 카드수수료가 불공정하다며 이를 시정해달라고 나선 것이다. 카드사의 불공정은 그들이 수수료로 받아 챙기는 이윤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천문학적 수수료이득이 이제 비로소 '공정한가'라는 잣대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카드사들도 여론을 의식, 수수료인하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다는 것이 '을'의 시각이다. 이제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검증해 적정이윤의 수준에서 결정짓자는 것이 공정을 부르짖는 '을'의 주장이다. 미국에서 불어온 바람이지만 금융위원회가 금융계의 돈잔치를 경계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이다. 상반기 결산 은행들은 높은 금리차에 힘입어 천문학적 이익을 구가하고 있다. 여기에다 각종 수수료이익까지 합쳐 그야말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많은 액수의 배당이 예상되자 '탐욕스런 돈잔치'를 절제하라는 주의보가 내려졌다. 전세계 주요도시에서 항의시위가 이어졌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는 은행의 금리와 수수료도 공정이라는 잣대로 검증해야 하고 과도한 이윤은 불공정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로 제도되어야 한다. 최근에는 6.25전사자에 대한 보상제도가 우리를 아연실색케 했다. 아직도 이런 불공정하고 시대착오적인 제도가 있다는데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전사자 보상금은 1951년부터 1974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군인사망급여금 규정을 원용해 당시화폐단위로 5,000환을 5,000원으로 고쳐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사망한 사람을 위로하는 보상성격의 급여가 짜장면 한그릇 값에 불과하다는 것은 불공정의 극치라 할만하다. 그런 제도가 37년간이나 버젓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소통이 없었는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수많은 법과 제도가운데 이런 불공정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힘의 원리에 의해 가진자나 사회적 강자에 의해 만들어진 법과 제도, 그런 제도에 기생하여 배불리며 사회적우위에 서서 기득권을 누린자들이 평등사회, 공정사회로 내려오는 데에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가 공정사회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이익집단의 자각과 성찰이 없이는 그마저 요원하다. 무엇이든 '공정한가', '적정한가'라는 잣대로 재조명하고 검증하는 사회적 무브먼트가 있어야 한다. 불공정은 어쩌면 자유경제체제의 가장 어두운 부문일 수도 있다. 탐욕과 과도한 이익을 향유하는 무리를 바라보는 덜가진자,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메는 자들의 불만이 이제는 세력화되어 지구촌의 새로운 트랜드를 형성하고 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선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해마다 사회갈등으로 치르는 비용은 엄청나다. 공정의 룰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이다. 그러나 갈등비용은 분명 우리를 힘들게 하는 낭비성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공정하다면, 제도가 공정하다면 없어도 될 비용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정치 않은 것을 힘의 원리로 관철하려는 시도이다. 지금은 한미FTA가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다. 판단의 기준은 당연히 ‘공정‘이어야 한다. 또다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의 내곡동사저 백지화가 공정사회로 가는 작은 시금석이 되었으면 한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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