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불어닥친 동유럽의 민주화바람은 마침내 공산주의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 거센 바람은 지구촌을 이데올로기로 양분, 냉전의 회오리바람에 몰아 넣었던 한축의 붕괴를 의미했다. 체코 루마니아 , 헝거리등 동구의 구 소련체제하의 공산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독재자들의 최후도 비참했다.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코는 경찰에 의해 공개처행돼 거리에 내팽개쳐진 최후의 모습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당시 우리에게 가장 인상깊게 다가온 것은 베르린 장벽의 붕괴와 통독이었다. 1961년 장벽이 베르린시를 동서로 갈라 놓은 후 27년만의 일이었다. 우리에겐 6.25전쟁이후 155마일의 휴전선이 남북을 갈라놓고 있었지만 독일은 167.8㎞에 3.6m 높이의 장벽이 동서를 막고 었다. 장벽이 세워진후 1,393명이 자유를 찾기위해 장벽을 넘다 숨졌으며 1만명이 넘는 군인과 1천여마리의 군견, 사복을 한 5백여명의 정보원들이 상시 감시를 하던 공포의 장벽이었다. 그 장벽은 공산주의체제의 상징처럼 철통같았고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으로 다가왔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장벽의 유일한 통로인 브란덴부르그 문에서 구소련을 향해 “이 문을 여시오”라고 일갈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옹성은 노도와 같은 민주화의 바람에 힘없이 무너졌다. 장벽이 무너진 직후 방문했던 동베르린은 어둡고 칙칙한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어 공산체제의 무력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나 지금의 동베르린은 세계교역의 중심으로, 각국의 유럽전진기지로 붐비고 있어 체제의 변화를 그대로 체감할 수 있다.
동유럽에 거세게 불어닥쳤던 민주화바람은 올들어 중동에 모래바람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자스민 혁명으로 일컫는 중동의 모래바람은 독재자들을 하나, 둘 권좌에서 몰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42년간 철권정치를 휘둘러 온 무하마르 가다피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마치 1989년의 차우체스쿠처럼... 그가 1969년 무혈구데타로 정권을 잠아 온갖 기행과 인권탄압, 정적살해를 일삼아 온 것을 응징하듯 혁명군은 살아있는 그를 재판에 회부하기 전에 죽인 것이다. 중동의 자스민 혁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와 예멘의 살레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 불안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한때 신병치로를 위해 은거했던 예멘의 살레는 카다피신세가 머지 않았다는게 현지의 분석이다.
이제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독재자는 북한의 김정일 뿐이다. 독재 삼두마차중 아사드, 살레가 최후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동갑내기 카다피는 선대인 김일성에 이어 2개째 북한과 유대관게를 맺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그는 마침내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북한은 66년째 2대에 걸친 세습을 하면서 철권정치를 계속하고 있고 이제는 3대세습을 획책하고 있다. 그들은 핵과 미사일 개발로 평화를 위협하면서 그들의 체제고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눈은 이제 북한에 쏠리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지정학적 우위를 누리며 체제수호에 전력하고 있지만 민주화의 바람은 마침내 북한의 그것도 허물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독재자들의 최후를 보면서 우리도 이제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전제로 한 통일준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베르린장벽이 예고 없이 어느날 갑자기 붕괴됐고 중동의 자스민 혁명도 지극히 단순한 문제에서 확대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러시아와 식량수출국의 밀수출 억제로 빵값이 오르자 성난 군중들이 거리로 나섰고 그것이 민주화바람으로 확대된 것이다. 지금 북한이 그런 위기에 직면해 있고 베르린 장벽붕괴 직전 동독 탈출러시와 비슷한 현상이 북쪽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통일세를 신설하고 통일에 대비한 제도적, 법적장치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가다피의 최후는 우리에게 북한체제의 붕괴를 연상케 한다. 지금 우리는 동유럽의 민주화와 중동독재자들의 붕괴에서 새로운 역사의 순환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교훈중 하나는 독재자는 반드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