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대학 운동장에서 외국인근로자한마당축제가 있었다. 필리핀, 몽골, 인도, 스리랑카, 중국,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말도 능숙하게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득한 옛날을 떠 올린다.
1988년 16년간의 외국생활을 뒤로 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왔을 때 당시 구미에서는 외국인이 지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던 때였다. 겨우 6살밖에 안된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2년 반을 독일에서, 그리고 1년을 싱가포르에서 살다 와서 다문화가 전혀 새롭지 않았다. 그러나 태권도를 배우러 체육관을 다니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주변에서 듣기 시작하고 어느 날 물었다.
“엄마, 내가 미국사람이야?”
“Alex 말고 나도 한국이름 있으면 좋겠다.”
친정아버지께서 ‘최준혁’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지만 이름이 바뀌었다고 얼굴까지 바꿔지지는 않는 것. “친구들이 나는 아이노꾸데! 그게 뭐야?”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Alex는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호적이 없으면 초등학교 입학이 어려웠던 것. 그렇다고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보내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갈 여건도 아니었다.
동생이 자기호적에 아들로 올리고 학교를 보내자고 했지만 당시 어디를 가든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Alex,의 미래를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는 결코 밝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는 결국 힘없이 무너지고 아빠에게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태어나서 단 하루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던 아들과의 이별은 평생 가슴의 멍이 되어 버린 것.
20년이 훌쩍 지난 오늘 우리사회 환경은 많이 변했다. 지역 곳곳에 이주민을 위한 상담소와 그들을 위한 갖가지 정책과 교육과정, 그리고 온갖 다문화관련 프로그램을 수시로 TV에서 본다. 20년 전 일반인들이 쓰지도 않던 ‘다문화’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 속에서 자주 듣고 보는 단어가 되었다.
우리사회 곳곳에는 다문화가정을 많이 보고 이제 더 이상 국제결혼도 험(?)이 되지 않는 오늘.... 얼마 전 지인이 자기 딸이 이태리남자와 결혼한다고 당당하게 자랑하는 것을 보고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21세기 지구촌시대! 말 그대로 국경없이 이제 모두가 한 가족이다. 모두가 함께 어울려 서로를 존중해주고 각자의 문화와 풍습을 자랑하는 축제에 가족과 함께 나와 웃으며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운 10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최윤희 구미1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