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보훈지청 복지과 류수연 탕탕탕.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쯤. 당시 러시아의 관할 아래 있던 하얼빈(哈爾濱) 역사에서 총성이 울렸다. 첫 세 발의 총탄에 조선 침략의 원흉이자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절명했다. 대한민국의 국권이 침탈돼 국운이 기울던 시절 일본제국주의를 호령하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여 한국인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쳤던 그는 만 30세의 청년 안중근이다. 안중근 의사는 곧바로 체포되었고 일본 관헌에 넘겨져 여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았으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로 일본의 침략 행위를 통렬히 공박하여 시정을 요구했으며, 사형선고를 받고 1910년 3월 26일 형장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서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리고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고 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서고 있는 이른바 인생 마지막 순간의 기로에서도 뒷사람들로 하여금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의 발전을 위하여 사람마다 제 구실을 다하게끔 당당한 의기를 심어준 것이다. 그의 의연함과 숭고한 애국심, 무한한 헌신성이 오늘날 세계화로 대변되는 무한경쟁시대에 우리가 처한 역경의 상황을 넘어서게 할 정신적 귀감이 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역사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불멸의 족적을 남겼으며 우리 국민에게 자랑스러움으로 남아있다. 정부는 작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유해가 조국이 아닌 남의 나라에 있음이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그의 넋과 정신은 뮤지컬로 부활하고 연극으로 다가와 우리의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그를 추모하니 그는 결코 슬프지 않으리라 생각해본다. 앞으로 200주년이 되고 300주년이 되어도 그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대한국인(大韓國人)이다’고 선언한 안중근 의사의 순결한 정신이 우리 사회를 흠뻑 적셔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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