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톨킨이 1950년대 3부작으로 쓴 장편소설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만으로도 1억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에게는 책 보다 영화가 더 친숙하다. 뉴질랜드의 피터 잭슨 감독은 3억7000만 달러를 들여 3부작 영화로 만든 뒤 2000년대 초 매년 한편씩 내놓으며 전 세계에서 29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이 영화의 큰 줄거리는 악의 군주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만든 절대반지가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인 호빗족의 프로도에게 넘어가는데, 절대반지가 다시 악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영원히 파괴할 수 있는 불의 산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모진 고난을 겪는 동시에 스스로도 반지를 소유하고 싶다는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주인공은 호빗족 친구들의 도움뿐만 아니라 요정, 인간 등 다른 종족의 도움을 받으며 임무를 완수해낸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구도지만 다양한 캐릭터, 긴장감을 주는 갈등 구조, 화려한 영상이 장엄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그려져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0년 전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를 둘러싼 통상 환경이 영화 속 배경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초기에 선의 진영이 악의 진영을 물리쳤듯이 우리는 지난 글로벌 경제위기를 신속히 빠져나오는 듯 했다. 그러나 위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부활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의 재정위기가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까지 주요국의 집단적 해법 모색이 주효했으나 오는 3∼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가 어느 정도 효력을 보여줄지 걱정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지금의 글로벌 경기침체(recession)가 지난 세기의 대공황(depression)과 다른 점은 주요국들이 보호무역주의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호무역주의는 그 유혹의 강렬함이 영화 속 절대반지와 닮았다. 보호무역주의란 반지를 끼는 순간 일시적으로 국내 산업 보호와 지지도 상승이라는 강력한 효과를 맛볼 수 있지만 전 세계 경제에는 독이 될 수 있다. 현재 다자적 자유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 나가려는 마법사 세계무역기구(WTO)가 어려움에 빠져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까지 칠레를 시작으로 아세안, 인도를 거쳐 유럽연합(EU), 페루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세계 44개국을 협력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또 다른 강력한 원군인 미국과 연대하기 위한 마지막 문턱에 와 있다. 1000 페이지가 넘는 FTA 협정문은 최대한 무역의 흐름을 열도록 약속하고 있지만 서로의 민감한 부분은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우리의 우방이지만 덩치가 큰 그들을 여전히 경계하고 있다. 그 약속이 제대로 된 것인지 조금 더 살펴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경제적으로 영속될 것이라면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절대반지를 껴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것임을 안 주인공은 유혹을 뿌리치고 반지를 파괴한다. 이득을 말하기 보다는 피해를 말하기 쉽고, 그 피해를 키워 말하는 유혹을 참기 어렵다. 한·미 FTA의 부정적 영향을 제기하는 것은 보완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일부를 문제 삼아 전체를 거부하는 유혹에는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한·미 FTA가 발효돼야 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FTA통상실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