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회를 방문, 한미FTA를 비준해주면 3개월이내에 ISD를 재협상하겠다며 협조를 당부했으나 야당으로부터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미국의 확인서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때맞춰 미국은 모든 문제에 대하여 재협상의 길은 열려있다고 공식발표했으나 국제간에는 문건이 필요하다는 것이 야당의 반응이었다. 이는 겉보기에는 조건부이지만 사실상 거부의사인 것이다. 어쩌면 야당은 처음부터 FTA에 관한한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참여정부시절 그들의 손으로 만들어 합의를 이룬 국제간 조약의 성격을 이후 이를 승계한 정권이 뒷마무리 하려하자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그런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대통령의 국회방문이후 열린 야당의 비상대책회의에서 한 중진은 FTA를 합의해주면 야권통합은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야당이 FTA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FTA에 관한한 소통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한미FTA는 여당이 힘으로 변칙통과 시키거나 아니면 야당이 주장하는대로 다음 국회로 넘기는 수밖에 없다. 여당은 국민의 여론을 의식, 또다시 변칙통과로 인한 책임을 지지않기 위해 지금껏 협의를 시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큰 부담을 안게됐다. 소통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사회를 소통의 위기까지 몰고 왔을까. 나와 뜻이 다르면 무조건 귀를 막고 같은 집단이면 잘못된 것도 포용하는 극한적 소통부재와 편가르기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국민앞에서 한 약속조차 문서로 받아와야 믿겠다는 풍조는 망국적이다.
참여정부시절 익숙했던 ‘코드’라는 말이 지금은 소통의 위기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서로 코드가 맞지 않으면 거래나 소통을 끊고 비방하고 침소봉대하던 것이 이제는 정치의 트랜드로 고착되지는 않았는가 뒤돌아 볼 일이다. 그 결과는 촛불집회와 같이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처럼 확대 재생산되고 천문학적 사회갈등 비용이 소요됐다. 트위트와 SNS는 코드가 맞지 않는 집단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도구로 전락해 소통의 총아라는 본연의 역할이 무색해졌다. 이제는 한미 FTA가 망국적이고 조약이 비준되면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한다는 유언비어성 정보가 SNS를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미 FTA를 폐기하라는 주장까지 판을 치고 있다. 이같은 무책임한 주장이 난무하는 것은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귀결되고 있으니 실로 망국적이라 할 만하다.
코드의 불일치와 소통의 부재는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다. 등록금 반값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은 왜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릴 수 없는가에 대해선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생을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들과 코드가 맞는지 우라의 대학생들은 핀란드나 노르웨이처럼 등록금 없는 대학을 주장하지 않느냐는 발언에 반색하면서 그렇게 되려면 우리도 조세부담율이 30%는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에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2040세대들은 일자리와 복지를 내세우지만 정작 그들이 우리사회의 중심계층으로서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제각각 따로 노는 계층간, 신분간, 정치집단간 분할은 코드정치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미 FTA에 나타난 이분법적 대치와 같은 사안에 대한 입장변화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시선을 좁혀 우리지역의 한수원이전문제도 소통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 갈등을 빚으며 공을 들여 왔으나 결국은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고 지금껏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경주시는 한수원의 도심이전을 전재로 모든 것을 추진해왔고 주민들은 여기에 기를 쓰고 말려들지 않으려고만 했다. 결국은 지졍부장관이 밝혔던 신의에 관한 문제로 귀결, 원안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답을 듣게 된 것이다. 소통의 부재가 소통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한수원문제는 이제부터라도 양측이 진정성을 갖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 아무런 전제조건 없는 결론을 도출해 나가야 한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