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날마다 만나던 사람과 또 만난다. 낯선 사람 만나기가 주저되고,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윤리학에 보면 행복한 사람을 고독하게 한다는 것도 아마 부조리 일 것이다. 생각건대 어떠한 사람이든 자기 혼자서만 모든 선을 소유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을 그 본성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아는 사람 많은 것도 다행한 일이고, 그런 사람을 우리는 늘 부러워하며 발치가 넓다고 자랑한다. 사람은 부덕이 없이 덕을, 미움이 없이 사랑을, 추함이 없이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존재이다. 사실은 인간은 악과 번뇌의 덕분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인생은 거기에 맞춰 살기에 적합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낯선 사람은 경계의 대상이고, 정을 나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족처럼, 식구처럼 하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가족(家族)은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생활 공동체로 가정 제도에 있어서 한 집안의 친족을 말한다. 세상의 어떤 것 보다 가까운 사이요, 촌수도 따지지 않은 관계의 사람이다. 한 조상에 의해서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혈통이라 상·하 질서의 체계가 분명해 집안이라 한다. 그래서 ‘어버이는 자식의 영광이요, 자손은 늙은이의 면류관’이란 말이 생겨났다. 가족에는 위계질서가 있고 거기에는 예절과 존경이 뒤따른다. 그것이 이어지면 가정 전통이 이뤄지고 집안 대(代)가 자리를 하게된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가장(家長)이 확고하게 지배하는 가족 속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평화가 깃들인다.”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고 가족끼리 주고받는 일은 무상으로 한다. 천하에 열쇠를 맡길 수 있는 관계는 가족뿐이다. 대재벌의 가문도 가족끼리 형성되며 정치 또한 마찬가지다.
조선시대를 비하해 일본사람들은 이씨(李氏)조선이라 한다. 전주 이씨의 혈통이 다년간 국가를 통치하고 지배한 것을 얄게 표현한 것이다.
특히 공산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가 그렇다. 3대 세습의 친족통치가 가족으로 구성돼 있는 혈통주의로 구성되어지는 현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한 이유는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핏줄’뿐임을 확신하고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간에, 형제간에 무엇보다 가장 안전하고 확고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가 통치신념으로 아들은 어머니가 돌봐주고 딸은 아버지가 돌봐준다. 아버지·아들과 어머니·딸의 법칙은 사랑의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혁명의 법칙이며 해방의 법칙이며 생존의 법칙이라 한 것이다.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은 말할 필요조차 못 느끼지만 젊은 시절과 달리 생의 애착으로 길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나이일수록 귀소현상이 간절하다. 집을 찾는다는 것은 가정을 찾는 것이며 거기엔 항상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둥지(가정)를 더럽히는 새는 비열한 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