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복은 조선 숙종시대에 일본을 드나들며 막부로부터 울릉도등에서 일본인들이 조업을 못하도록 서약을 받아낸 민간인이다. 그 시절 조선은 섬에서 사람을 비우는 정책을 썼고 그 틈을 타 일본인들이 노략질과 조업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용복의 민간차원의 대일교섭은 당시 조정에도 알려졌고 애도막부는 조선에 다시는 노략질을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최근 발견된 숙종시대의 과거시험문제와 답을 쓴 문서 14장은 당시 조정이 일본의 노략질에 대한 고민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1696년 시행된 문과전시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잘 아다시피 독도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신라 지증왕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일본의 기록은 애도시대인 1618년 호키번이 당시 막부로부터 하사받아 경영해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일본의 학자들은 호키번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봉건사회에 막부가 섬을 나눠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용복이 애도로부터 울릉도, 독도는 일본령이 아니므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도 일본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일본은 1905년에야 지역현령으로 다케시마는 일본령이라고 발표한 것 외에는 별다른 역사적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다.
독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최근 우리의 독도개발계획에 일본이 또다시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본대사가 우리의 외교통상부를 찾아 항의한 것이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입장은 현재 기본설계단계이며 이후 실시설계, 문화재조사의 절차가 남았으며 그런 단계 를 거치면 정부내 독도영토관리회의를 거쳐 계획이 시행된다는 것이었다. 이에 일본이 계획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 것은 불문가지이다.
독도를 개발하고 실효적 지배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우리의 자연여건등을 최대한 활용해 자원화하는 일련의 계획중 하나일 뿐이다. 정부는 최근 4,000억원을 들여 독도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바 있다. 현재 300t급에 불과한 접안시설을 5,000t급까지 늘리고 방파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수중정원과 공원을 조성해 관람시설을 만들어 관광자원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추진하고 있는 해양과학기지등과 함께 독도가 실효적 지배단계를 넘어 실질적 자원화 단계로 이행해 가는 중요한 과정이라 할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적극적 조치는 이후 민간차원의 투자는 물론 국민들의 높은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독도가 한일간의 관심사에 국한되어 있을 지 모르지만 동해안시대가 열리면 독도는 변해가는 해양환경의 중심에 서 온난화로 인한 바다환경의 변화를 관찰하고 대응해 나가는 전진기지로서의 역할도 담당해야 할 위치에 있다. 따라서 독도의 실효적 지배가 강화되면 민간인들이 상시 관광으로 독도에서 하루를 묵을 수도 있고 크루즈선으로 동해를 유람하는 코스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조선숙종시절 나라가 일본의 독도와 울릉도를 노략질하는 사례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겠느냐며 과거시험에도 문제를 출제했던 것을 보면서 우리도 독도에 대한 대책은 전방위적이고도 광범위하게 구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수많은 민간인들이 틈만나면 세계적 유수한 신문에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광고를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주장이다.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다. 그래서 정부의 독도개발프랜은 실효적지배라는 대외적 시위가 아닌 정당하고 장기적인 발전계획으로 승화돼야 하는 것이다. 신라장군 이사부와 안용복의 활약은 그때도 울릉도와 독도가 그들의 영토가 아니라 우리땅에 대한 노략질을 징벌하고 문서화한 것일 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일본은 결코 잊어선 안된다. 일본의 간헐적 독도도뱔에 들끓지 말고 실질적 조치로 그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