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노랫말처럼 ‘인생은 허공에 던져진 존재’이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 어디로 가며, 언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대사 세 가지는 태어나는 것, 결혼하는 것, 그리고 사망하는 것이다. 희노애락이라고도 하고 생고병사라고도 하지만 ‘생자는 필멸’이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태어나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죽고 없어진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세상을 장악하려고 하지만 죽을 때는 손바닥을 편다. 어릴 때부터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있지만 죽을 때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다. 공수래, 공수거이다. 마치 뜬구름처럼 살다가는 것이 생명이다.
허공은 모양과 빛이 없는 상태의 텅 빈 공중을 말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요 고고학자인 말로는 “이 세상의 공허함을 분명히 의식하지 않고는 또 그것에 대한 집념이 없이는 우리의 힘은 우러나지 않으며 참된 생활이랑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법구경’에도 ‘존재의 현상은 다 빈 허공’이라 했다. 불가에 입문한 한 스님이 지식과지혜가 삶을 지탱시키며 “남을 가르치려면 우선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그러면서 언제나 ‘즉사이진일(卽事而眞一, 매사에 진실하게 살라)’은 인간의 빈 마음을 채우라고 한다. 한 인간의 삶이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성장과 깨달음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쓰여짐을 강조한 면도 엿볼수 있다.
한 종교인은 학창시절 윤리시간에 흰 종이 한 장씩 받았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새가 날아간 뒤의 흔적을 그려보라”고 했지만 그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백지를 그냥 제출했다고 한다. “왜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느냐?”고 묻는 선생님에게 “허공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길수 없습니다”라 대답했다.
허공에는 흔적이 남지 않는다. 허공은 우리의 성품이 허공이고 삶이 허공이다. 불가에서도 중생들에게 어떠한 상(相)도 만들지 말 것을 설법하고 상을 붙드는 순간이 허공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의 짧은 인생, 행복은 허무하고 불행은 오래가는 것이며 부귀는 날개가 달렸고 권세는 어느날 밤의 꿈이라 한다. 어째서 마음은 허무한 생각에 동요될까, 어떠한 각도에서 사람의 마음은 허공을 맴돌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로만 여겨질까. 풀잎 끝에 맺혀있는 한 방울 이슬, 창망대해에 일었다 사라지는 한 개 물거품이다. 구만리장천이 지척이라 빈 하늘, 허공에 뜬 구름으로 인생은 그렇게 살다간다. 허공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고통과 집착의 또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하늘을 쳐다보니 노을은 붉게 물들고 그 허공으로 살아온 세월이 지나간다.
손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