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의 거리는 또다시 한미FTA 반대시위로 얼룩졌다. 경찰의 제지에 맞서 일부 야당의원과 시위대는 도로를 점령한 채 행사를 가졌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간에 크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졌다. 올 한해를 FTA정국으로 이끌옸던 정치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주변의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며 차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한해를 맞이해야 할 이 시점에도 안개 속을 헤메며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세계의 새로운 무역질서는 자유무역체제 아래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어 갈 것이 분명하다. 마치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국력을 한 군데로 모아 열국의 개방압력을 슬기롭게 극복,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시기와 비슷한 형국이다. 유럽과 미국등, 해양강국으로 성장한 외세들의 개방압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일본은 봉건사회의 번주들로선 이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형국이었다. 열국에 대응하기위해 채택한 것이 메이지유신이었고 상징성만 강조되던 일왕이 마침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신흥세력들에 의해 '존왕양이'사상이 형성돼 메이지유신이 가능해졌고 물밀듯 들어오는 외세에 굴복, 양이사상은 개화로 바뀌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본의 부흥을 뒷받침해 열국과 함께 동남아에서 최강의 나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우리는 어떠했는가. 열국들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에도 개방을 요구하며 압력을 가해왔다. 일본이 존왕양이로 무장할 무렵 우리는 대원군에 의해 쇄국정책이 세워졌고 그같은 정책에 국내의 권력체제는 양분되기 시작했으나 개화파는 모두 척결돼 결국은 강제에 의해 문호를 열게되고 한반도는 열국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리는 불행을 안게 된 것이다. 자발적 개항과 외세에 의해 개방당한 나라의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빚어 을사늑약이라는 나라잃는 상황에 달한 것이 우리의 뼈아픈 근대사이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는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김옥균, 김홍집등의 개화파가 싹트고 있었듯 일본의 요시다 쇼인의 서당에는 이토오 히로부미와 야마카다 아리모토가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김옥균과 김홍집등 개화파는 후에 망명길에 오르거나 거세돼 싹이 말라버렸고 일본의 이토오는 존왕양이에서 양이를 버리고 개화를 받아들이면서 일본의 위치를 열강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한일 양국의 운명을 극명하게 갈라놓은 근대사를 지금 반추하는 것은 다가올 미래, 벌어질 무한경쟁의 세계사에 처한 우리의 위치가 우리의 근대사에 처했던 개방압력과 어쩌면 매우 흡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 거리를 헤메며 한미FTA를 반대하는 자들을 개화를 반대하던 수구파에 빗댈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의 갈 길은 정해졌다. 세계무역의 새질서를 거역하기에는 우리의 상황이 절박하다. 미국이라는 거대시장을 우리 마음대로 요리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미 대세는 한미 FTA체제로 기운 이상 이후 발생할 양국간의 불균형을 논의하며 새질서에 우위를 점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 세계는 WTO가 추구하는 궁극적 세계무역 질서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딪고 있는 상황임을 우리는 수용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세밑을 맞아 거리에는 벌써 구세군의 자선남비가 등장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넉넉지 못한 한해였으나 나보다 어려움에 처해 고생한 사람들은 돌보는 마음도 생기는 것이 바로 세밑이다.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다가올 새해에는 또다시 잘못과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때가 바로 지금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는 올해도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준 채 아무런 결론없이 또 한해를 넘기려 한다. 계속되는 정쟁으로 국민의 피로감은 극에 달했고 마침내는 기존의 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새로운 정치형태를 갈구하는 시점에 까지 도달했다. 그 중심에 한미FTA가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해가 가기전 국민적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가 한 길을 바라보며 힘을 오으는 묘안은 없을까. 이 세밑에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개화에 우리의 쇄국정책과 을사늑약이 오브랩되는 것은 왜일까.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