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용만이반장’ 수훈소식은 문화재발굴로 일생을 보낸 한 장인에 대한 국가의 작은 보답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를 나와 문화재 발굴인부로 첫발을 내디뎌 큰 공을 세운 그에게 문화훈장이 주어진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잔잔한 감동이 이는 것은 그가 거친 발굴현장이 매우 다양하고 엄청났기 때문이다. 김용만(80). 그는 1966년 방내리 발굴현장에서부터 공주송산리 고분군, 1973년 천마총을 거쳐 황남대총, 안압지, 황룡사지등 신라유적지는 물론 익산 미를사지등 이름난 문화유적지 발굴현장을 두루 누볐다. 신라에서 백제로, 유적지가 있는 발굴현장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고 수천년 옛날의 문화를 오늘에 되살려 지금 우리가 찬란한 반만년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때로는 발굴현장 뻘밭 속에서 신라금관을 발굴해내고 땅속 건물의 형태를 찾아내 작업의 방향을 잡아내는 달인이기도 했다. 발굴현장을 지휘하고 고증하는 학자들마저 그와함께 하는 발굴에 안도하고 그의 혜안에 감탄했다. 작업인부라는 보잘 것 없는 위치였지만 그가 지킨 문화재 발굴현장은 지금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물론 찬란한 신라문화와 백제문화로 잘 보존되고 있다. 장인정신이 얼마나 고귀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지를 김용만옹망의 삶에서 엿볼 수 있어 흐뭇하다.
올 한해 경북지방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아마 낙동강살리기일 것이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윤곽을 드러낸 낙동강유역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를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강줄기를 따라 길게 뻗어내린 자전거도로가 그러하고 곳곳에 만들어진 자연친화적 문화공간, 녹색공간은 보기에도 환상적이다. 그런데 강을 가로지르는 보의 대부분에 누수현상이 생기고 있다는 어두운 소식이다. 4대강살리기로 새로 생기는 보는 모두 16곳이다. 그 중 낙동간구간에는 상주, 낙단, 구미, 칠곡, 강정고령, 달성, 합천함안, 창녕함안보등 8개의 보가 있는데 이들 모두가 누수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들 누수현상이 △없음 △비쳐나옴 △물이 떨어짐 △ 물이 흘러내림 △물이 분출 됨등 6단계로 분류할 때 두 번째 단계인 물이 비쳐나오는 수준에 그쳐 안전에 문제는 없다고 말한다. 이같은 현상은 보를 1m에서 1.9m씩 7회에 걸쳐 타설하면서 생긴 이음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공사를 연내에 마무리하려는 속도전에 문제가 있다며 철저한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는 4대강 전구간에 설치된 모든 보에 대해 점검반을 파견, 정밀검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보완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불안하다. 만약 어느곳이든 보가 터진다면 그것은 큰 재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숱한 반대속에 진행된 강살리기가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다.
낙동강 보는 천년신라의 문화유산 만큼이나 소중하다. 김용만 반장이 문화유적을 발굴하면서 흙 한줌, 돌 한조각, 기와와 사기조각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고 때로는 호미로 때로는 세밀한 붓으로 정성들여 파고 긁어낸 것은 천년의 역사가 자칫하면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적지 발굴은 그것대로의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김용만옹이 문화훈장을 받은 것은 그런 공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낙동강의 보도 앞으로 긴시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매우 귀중한 시설이다. 당연히 보를 건설하는 사람들은 지도감독을 하는 사람은 물론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쌓는 인부들까지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당장의 조그마한 실수가 후에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따라서 이미 문제가 제기된 만큼 근원적 문제차단에 나서야 한다. 상주보는 누수현상이 34곳이나 된다고 한다. 콘크리트 타설 이음부분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어라는 법은 없다.
김용만옹의 손을 거쳐 발굴된 천년의 문화유산이 오늘날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고 선조의 빛난 공적을 누리는 기회가 되듯 낙동강보를 건설한 현장에서 일한 사람들이 크나큰 보람으로 여길 수 있도록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 낙동강보 역시 우리에겐 매우 가치있는 역사적 산물이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