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륙에 군웅들이 할거하던 시절에는 백가들이 쟁명하며 저마다 경국과 사상, 정치를 논했다. 공자와 맹자등 불세출의 선인들이 나온 것도 그 시절이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훌륭한 경륜이 내세웠으나 당시에는 뜻을 이루지 못한 사상가나 정치가가 대부분이었다. 1957년 중국의 모택동도 공산당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당내에 백가쟁명을 도입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공산당의 백가쟁명은 당 권력층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본래의 뜻이 무색해지고 당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모색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는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름하여 신백가쟁명이라 할 만하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 트위트등 SNS는 그야말로 다양한 목소리로 어지럽다. 이제는 판사도 나와 현실정치에 목소리를 내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소리로 백가쟁명을 이루고 있다. 반면 현실정치는 표류하고 있다. 한미FTA로 인해 국회는 식물국회로 전락해 내년도 예산의 심의도 못하고 있다. 여당은 10.26보선 패배이후 내홍에 시달리더니 최근에는 디도스공격에 현역 국회의원비서가 연루돼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최고위원 3명이 사퇴해 이제는 혁명적 조치가 없이는 당이 분열될 위기에 봉착했다. 야당도 새로운 권력체계와 진보세력과의 통합으로 새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혼란기를 맞고 있다. 이런상황에서 나타난 박원순, 안철수바람은 국민들의 기존정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상승효과를 불러 일으켜 다가오는 내년 선거정국을 예측불가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럴 때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이합집산이고 철새와 불나비들의 활개치는 군웅할거 이다. 이합집산의 징후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무성의원은 최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도 신당창당 제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야당은 통합전당대회를 앞두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손학규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나선 상태다. 선진당 이회창의원은 안철수에 몰려드는 불나비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여당은 분당과 재창당의 갈림길에 섰고 야당은 진보대연합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두고 주도권다툼이 한창이다. 어김없이 줄주서기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정치꾼들의 행보가 바빠졌고 폴리페서들도 때가 온듯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게절이 온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우리의 정치는 밥그릇지키기에 몰두하면서 민생은 외면당하고 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또한번 실망하며 내년 총선을 벼르고 있다. 정치구조의 변화가 예견되면서 올 연말은 예년에 볼 수 없는 혼잡다단한 혼란이 예상되는 것도 분명하다. 이럴 때 국민들에게는 올바른 정치감상법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가 더럽혀졌다고 자리를 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십중팔구 불나비들이다. 자신의 속한곳이 더럽혀지고 외면당하면 먼저 동료들과 뜻을 합쳐 주변을 청소하여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도리이다. 집단의 정화를 외치다 그래도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그때 이탈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비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밝은 불만 보면 몰려드는 습성이 있다. 불에 타 죽을지도 모르지만 막무가내다. 음지는 외면하고 양지만을 지향하는 족속들이다. 대개 국민을 편안하게 모실 경륜보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쫒는 자들이다. 정치가 혼란스러우면 날뛰는 부류들도 경계해야 한다. 자신이 쌓은 학문을 현실정치에서 실천해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가르치는 것과 연구하는 것보다는 정치에 몰두해 줄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폴리페서들은 안된다는 것이다. SNS를 통해 정치를 넘보는 백가쟁명들도 일단은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제사보다는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자들을 가려내야 한다.
시절은 백가쟁명의 계절이다. 그러나 공자와 맹자를 가려내 그들의 경륜을 현실정치에 도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올바른 정치감상법이 필요한 것이다. 올바른 정치감상법에 지연, 학연, 혈연만 배제하면 우리의 정치는 지금보다는 훨씬 진보할 것이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