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태석신부의 일대기를 다큐멘트리 형식으로 제작한 영화 '울지마 톤즈'가 우리들 가슴을 감동으로 물들이고 있다. 개봉된지 1년이 지나면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자재단을 설립하자는 움직임과 추모음악회등 관련행사와 기념사업도 늘어나고 있다. 영화전반에 흐르는 인류애와 거침없고 끝없는 사랑이 과연 신은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고 그는 신의 사랑을 무한정으로 아무런 조건없이 나타낸 사랑 그 자체였음을 실감케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마저 25년 PD생활중 이토록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할 만큼 이신부의 조건없는 사랑에 감동했다.
이신부는 내전이 한창이던 남부수단을 제 발로 찾아들어가 숱한 전쟁고아들과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사랑으로 희망을 심어준 '슈바이처'였다. 학교를 지어 음악과 수학을 직접 가르치고 톤즈지방의 유일한 의사로서 의술을 베풀었다. 말라리아와 콜레라등과 싸워 나가면서 의도된 선교가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본보기로 그들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레요?'를 보면 하루 3백명의 환자를 돌봐야 했고 100km를 걸어서 밤늦게 찾아온 환자를 치료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세례명 요한(존)에 성을 붙여 '존 리'로 불리었지만 현지 어린이들은 '쫄리"라 부르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 곳에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의 어린이사랑은 계속됐다. 그에게는 검은 대륙의 헐벗고 굶주린 어린이들이 햇살과 같은 눈을 가진 보석같은 아이로 보였으며 마침내 대장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가지 그같은 사랑은 이어졌다.
이신부의 이같은 자기희생과 이웃사랑은 고등학생때 성당에서 본 한 신부의 행적에 관한 필름을 접한데 큰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의과대학을 마친후 다시 신학대학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남부수단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가 본 필름은 하외이 인근 몰로카 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48살의 젊은 나이에 숨진 다미앵신부의 일대기였다. 자기희생 없이는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교훈이 그를 남아프리카로 이끌었고 그는 그곳에서 죽도록 사랑을 베풀다 선종한 것이다.
최근 로마교황청은 '울지마 톤즈'를 이태리어로 번역해 교황이 보는데서 상영했다고 한다. 감동과 눈물로 이어진 울지마 톤즈는 앞으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포르투갈어등으로 번역돼 상영 될 예정이라고 한다.
새삼 이태석신부의 일대기를 장황하게 되돌아 보는 것은 그는 비록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의 숭고한 전설응 아직도 살아남아 그를 본받으려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재능과 여유라도 나누며 사랑을 실천하려는 분위기는 연말을 맞아 더욱 돋보인다. 사랑은 조건없이 베푸는 것이라는 가르침에 공감해 이름을 밝히지 않고 거액을 쾌척하고 직접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이 연말에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날씨는 겨울을 향해 치닫고 있다. 수은주는 영하로 곤두박질하고 시베리아의 칼바람은 뼛속을 파고드는 그야말로 엄동설한이다. 지금이야말로 이웃을 향해 사랑을 베풀 때이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긴 밤을 떨며 지새는 사람, 거리에서 한데 잠을 자면서 신문지 한 장이 아쉬운 사람, 이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하다. 한번쯤 주위에 눈을 돌려 이들과 아픔을 같이하며 사랑을 나눈다면 우리사회는 그만큼 밝아질 것이다. 이태석신부는 베풀어도 베풀어도, 사랑을 나눠도 나눠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굽힘없이 사랑을 베풀어 그들을 감동시켰고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심어주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랑은 울고 있는 톤즈에 희망을 심었다. 이 계절에 우리도 작은 사랑의 씨앗을 심어보자. 한해가 저물기 전에...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