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7월10일로 기억된다. 당시 지방신문사 편집부국장으로 근무하던 필자는 당일자 석간신문을 만들어 놓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교외로 향하던 중 김일성 사망이라는 급보를 받았다. 달리던 차를 돌려 신문사로 돌아왔을 때 텔레타이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김일성사망 관련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김영삼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다고 했던 터라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무슨 변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일시적 공황상태였던 정신을 가다듬고 호외를 찍어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당시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 전체를 거대한 히스테리집단으로 몰고 갔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평양시민들은 김일성광장 등에 모여들어 땅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시계가 멈춘 듯 조선시대 임금의 승하를 능가하는 애도의 물결과 조문행렬은 우리의 상상을 절했다. 평양의 모습을 TV화면을 통해 본 우리국민들은 크게 경악했고 외신들도 북한집단의 이질감에 무어라 표현할 수 없어 안절부절 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김일성을 승계해 철권통치를 휘둘러 온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상황은 당시와 비슷해 왕성하게 활동하며 건재를 과시했던 지도자가 급서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사망이 예고되지 않은 긴급상황 이었지만 평양거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애도의 분위기지만 평상심을 잃지 않은 침착한 모습이었으며 집단히스테리도 보이지 않았다. 개성공단도 평소와 같이 정상가동 됐고 군대도 특이사항이 없다고 한다. 김정일이 열차안에서 갑자기 발생한 심근경색과 심장계통의 발병으로 숨졌으며 부검결과도 마찬가지라는 발표가 있었고 신속하게 장례위원명단이 발표됐다. 외국의 조문사절을 사절하며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만수대에 안장될 것이라는 계획까지 밝혀졌다. 장례식은 12월28일에 평양에서 치러지며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한다는 내용도 발표됐다. 지금 북한은 예상과는 달리 무엇엔가 이끌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김정일의 장례가 끝나봐야 북한의 권력구도 변화와 사회 또는 정치구도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현재로선 북한은 지도자의 급사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북한지도자의 유고에 총력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우선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군이 비상체제에 들어가는 동시에 한미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고 북한에 체류 중인 우리국민의 안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제사회의 반응을 주시하며 닥쳐올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핵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의 급작스런 정변은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온갖 가능성을 두고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북한변화의 몇가지 가능성을 두고 면밀히 검토, 대처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북한체제 변화가 그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의 화해로 전환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미국도 김정일 사망이후 북한정권의 안정적이고 평화적인 승계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 들려온 김정일의 사망소식은 다가오는 새해가 과거 어느 때보다 격동과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한다. 한반도에 있어 북한은 내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에 김정일 사망이후 권력재편이라는 중요한 내적 갈등이 예고 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권력투쟁이 대남도발이라는 극한적 방법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남쪽도 그리 편안한 상황은 아니다. 여야 모두 정치변화를 꾀하고 있다. 새판짜기가 아니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그 과장에 놓여 있는 총선과 대선은 향후 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수, 집권세력에 따라 대북관계에도 변화가 따를 것이다. 김정일의 사망은 내일을 격동의 세월로 몰고 갈 것이 분명하다. 역사는 김일성 사망이후 한 동안 멈춰선 듯 남북관계를 동결시켜왔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이후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리편에 서도록 지형을 바꾸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대처가 절실하다. 김정일의 조문 등 의전은 차안의 부재다.
변 린 9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