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체제의 쇄신방향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비대위 구성직후 나온 첫 조치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의 포기였다. 죄를 지었으면 회기중에라도 검찰의 소환에 응하겠다는 것으로 상당히 획기적인 결정이다.
곧이어 나온 것이 비서가 디도스 공격혐의를 받고 있는 최구식의원의 자진탈당요구이다. 당의 쇄신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결정일는지 몰라도 야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여당 특유의 꼬리자르기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재오의원의 불출마와 이상득의원의 자진탈당마저 거론하고 있다. 새로 선출된 공천.개혁분과위원장의 말이다. 이재오의원은 이명박정권의 실세로 국가가 이처럼 신뢰를 쌓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책임을, 이상득의원은 보좌관의 거액수뢰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위해 불출마와 자진탈당이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이쯤되면 야당이 꼬리자르기라고 할만하다. 앞뒤가 맞지않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쇄신하려면 먼저 디도스와 보좌관수뢰에 대한 진심어린 대국민사과가 선행돼야 한다. 두 사건이 현재 수사중이지만 이는 분명히 당과 연관이 있는 뚜렷한 범죄이다.
다만 현직 국회의원과 당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는지는 수사결과 드러날 사항이지만 용서받지 못할 권력형비리와 선거질서를 어지럽힌 범죄란 점에서 당차원의 사과는 당연하다. 사과없이 연장선상에 있는 국회의원을 자진 탈당하라고 한다면 이는 비난의 근원을 잘라냄으로써 예봉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이명박대통령의 탈당까지 거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정권의 나쁜 이미지를 도려내 차별화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물리적 변화는 참 쇄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한나라당은 명심해야 한다. 참쇄신은 집권여당으로서 지난 4년간의 공과를 짊어지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먼저이다. 이제와서 문제가 된 인사들을 출당하고 정권의 실세들을 제거하고 그들에게 십자가를 지운채 우리는 살아남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한나라당의 쇄신은 화학적 변화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명을 바꾸어서도, 과거역사와의 단절도 안된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의 영욕을 안고가야 한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하고 십자가로 삼아 환골탈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그 진정성을 믿게 된다. 화학적 변화는 주류와 비주류가 화합해 파벌을 없애고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같이 지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비대위 김종인위원은 “당에 부담이 되는 요인들은 하루 빨리 제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으로도 제2, 제3의 최구식, 이상득, 이재오로 꼬리자르기를 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전형적인 임시방편식 쇄신이 아닐 수 없다. 당에 부담이 되는 요인은 제거가 아니라 그 근원을 찾아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나가는 것이 옳은 길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부담이 되는 요인에 대통령까지 포함돼 탈당을 권유하는 사태이다. 이쯤되면 꼬리자르기에 이어 선긋기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당이 국민의 편에서서 민생을 돌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과거정권의 실책에서 벗어나 오로지 정권을 잡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당내에선 벌써부터 비대위원들의 발언과 움직임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쇄신을 빌미로 꼬리자르기와 선긋기가 횡행한다면 한나라당은 다시한번 국민을 실망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이다. 한나라당이 다시서기 위해선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지고 용퇴할 사람은 용퇴해 인적쇄신을 이루고 새로운 사람을 대거 영입해 당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발적이고 지극히 참회하는 분위기에서 이뤄져야 한다. 특정인이 특정인을 정죄하고 책임을 지우는 조치로는 진정한 쇄신을 이룰 수 없다. 비대위의 상황인식이 중요한 시점이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