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경찰이었던 이근안목사가 마침내 자신이 소속된 교단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그는 고 김근태전의원을 칠성판에 올려놓고 고문했던 장본인이었다. 세상이 바뀌어 영어의 신세가 된 그는 교도소에서 기독교에 귀의,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됐다. 후에 그는 고 김근태의원을 만나 과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고 김의원은 “그게 어디 모두 당신 탓만이겠느냐”며 관용했다. 그러나 김근태의원이 사망하자 다시 이근안씨가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김근태의원의 빈소에 나타나 속죄의 눈물을 흘릴 것인가가 관심사가 됐고 끝내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언론이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찾아낸 그의 삶은 비참했다. 부인이 폐지를 주워 생활을 하고 자신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이번에는 그를 목사로 안수해준 교단이 문제를 삼고 나섰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목사가 될 수 있느냐는 여론에 굴복해 마침내 목사직을 박탈한 것이다. 그는 이제 신(神)이 버린 남자가 됐다. 여론의 힘은 종교마저 그를 버려 마지막 안식처 마저 빼앗아 버린 것이다. 원래 유대교와 이슬람의 율법은 엄격하다. 그중 하나가 간음한 여자는 거리로 끌고 나와 돌로 쳐죽이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이슬람국가에서 이런 일이 화제에 오르곤 한다. 예수가 살아 생전, 간음한 여자가 거리로 끌려나와 성난 군중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다. 이를 본 예수는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일갈했다. 그러자 성난 군중들은 하나 둘 돌을 내려 놓고 사라졌다. 예수는 그 여인을 용서했다.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다는 그의 가르침의 한 단면이었다. 예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했다. 또한 ’누구든지 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해 사람을 과거의 업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줬다. 고문경찰이었던 이근안도 그런 기독교의 교리에 안식을 얻고 싶어 했으나 여론은 그마저 그런 안식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론은 참으로 무섭다. 특히 요즘같이 세계의 모든 팩트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SNS의 위력은 대단하다. 세상을 숨긴 곳없이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것이 있다. 다중의 힘으로 SNS를 이용, 여론을 몰아가고 특정인을 매도하는 일이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아무런 근거없는 여론에 휩싸여 고통과 불면의 밤을 보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한상황을 택했으며 정치인들도 인터넷상을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시달리다 낙마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마치 군중의 심리에 이끌려 간음현장을 확인하지 않은 채 그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에는 대통령의 외손녀가 값비싼 패딩을 입고 TV화면에 나타난 것이 문제가 됐다. 지금 SNS는 그 패딩을 두고 여론몰이가 한창이다. SNS의 놀라운 전달력과 대중의 힘이 만나면 괴력을 발휘한다. 가히 지금 우리는 SNS의 위력을 실감한다. 다가오는 총선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여론선거가 될 것이다. SNS를 통한 선거운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풍토를 보면 우려되는 점이 적지않다. 상대방은 무조건 적으로 매도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정치적 궤를 달리하면 여론몰이를 하는 풍토가 그러하다. 긍정적 댓글보다는 부정적 댓글을 더 신뢰하는 풍토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집단이 여론을 한 곳으로 몰아 반대입장이 설 자리를 잃게 하는 것도 SNS의 한 흐름이다. 우리나라 선거풍토상 선거 하루이틀전 극성을 부리는 ‘아니면 말고’식 루머는 반론을 펴고 결백을 주장할 여유도 없이 번져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SNS를 통한 선거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왕 SNS선거운동을 허용한 이상 이에대한 장치마련이 필수적이다. 다중의 매도에 희생양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이 용서한 이근안을 여론이 거리로 끌고나와 정죄하듯 진실보다는 여론몰이가 대세를 좌우해선 안된다. 여론몰이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데 지금 정치권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눈앞의 현안에 급급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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