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게 말하면 지난 설날이후가 임진년이다. 육십갑자(甲子)로 일곱 번, 420년전 우리는 왜구의 칩입으로 국가의 존폐가 풍전등화(風前燈火),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했었다. 일찍이 10만양병을 주장했던 곧은 선비와 군신들의 주창을 멀리하고 주도권싸움에 매몰됐던 군신들의 대세에 몰려 왜구의 침략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담했던 시절이었으며 강산은 왜구에 의해 마음껏 유린당했다. 수많은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관군의 몫을 대신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순신이라는 불세출의 장수가 나타나 그나마 남해바다를 지키며 왜구의 목을 죄었고 진주성대첩으로 왜구의 북진을 일시적으로 막기는 했지만 강산의 유린을 막지는 못했다. 제왕은 북으로 북으로 몽진을 거듭했고 그 사이 수많은 백성들이 도륙당했다. 진주성은 7만 군관민이 왜구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했으며 진주성과 남강은 온통 찢긴 살점과 핏물로 붉게 물들었다. 지금도 진주성을 돌아보면 그때 숨진 원혼들이 구천으르 헤메고 있는 듯하다. 420년전의 일이다. 이명박대통령은 최근 가진 청와대 워크샾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철학과 정체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세계경제가 어렵고 국내적으로는 총선과 대선이 있어 위기일 수 있지만 정신차리고 열심히 하면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은 400m계주에서 바톤을 넘겨줄 사람이 속력을 내어야 다음 주자가 더 빠른 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잇달아 터지고 있는 악재를 염두에 둔 것으로 결코 레임덕현상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이명박정권을 창출했던 공신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측근들의 비리와 여당의 핵심맴버들의 후퇴는 과거 정권에도 나타났던 정권말기적 현상이다. 이대통령의 경우 최근 그의 형과 이시중 방통위원장의 사의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집권여당에서마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마저 높다. 과거정권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당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겠다는 의지이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레임덕 현상을 불러오는 악재임이 틀림없다. 국민들로서도 레임덕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 틈을 타 물가가 불안정해지고 대기업은 투자를 꺼려 일자리가 불안정해진다. 정치권은 새로운 권력을 향해 이합집산이 이루어 지고 새 판짜기로 민생에는 소홀해지기 쉽다. 그런데도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에 놓여있다. 세계경제가 그러하고 수출을 국가성장으로 삼고 있는 우리로선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위축이 두렵다. 미국의 이란제제로 인한 석유수입선의 다변화와 에너지 확보도 올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강한 의지는 지극히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집권 마지막까지 성장의 끈을 놓지않고 최선을 다해 새 정권의 부담을 줄이고 주마가편하는 힘을 주겠다는 굳은 의지로 읽혀진다. 올해는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일곱 번째, 420년만이다. 1592년 그해를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된다. 그때의 시대적 상황과 대륙진출을 꿈꾸었던 일본의 야망을 우리는 어떻게 수용하고 대비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떻게 했기에 국토를 유린당하고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에 볼아 넣었는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여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를 빌미삼아 통치에 금이 가지 않도록 정부를 도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도리이다. 그것은 정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곧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의지를 꺽지 않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도리이다. 대통령이 무소의 불처럼 강한 의지로,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넘겨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그의 공과는 역사가 평가하도록 맡겨야 한다. 420년전 임진년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역사가 던져주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결코 역사의 가르침을 외면해선 안된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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