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사는 사회는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는 테두리에서 함께 공종하며 살아간다. 남이 없고 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요, 내가 있고 너가 있으며 우리가 존재” 하는 곳이라 했다.
남이 나만큼 소중하다면 세상은 정말 살맛 날 것이다. 내가 있고 상대가 있기에 우리라는 말이 생겨났고, 우리는 이 지구촌에 상종하는 인격체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나요, 그래서 모두가 귀한 존재이다.
남을 나처럼만 느낀다면 과연 법이 필요할까라는 의아심도 가져본다. 인간이 묘한 것이 자기자신을 잘 처신하지 못하면서 남을 탓하기에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상당히 관대하고 남에게는 아주 인색하다고 한다. 자기의 자랑은 적극적이고 남의 흉에는 불을 켠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남의 자랑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등한시 한다.
희랍의 전설에 의하면 인간은 두 개의 자루를 메고 있는데 하나는 가슴에, 또 하나는 등뒤에 있다는 것이다. 앞에 걸린 자루에는 남의 흉을 주어 담고 등뒤에 있는 자루는 다른 사람이 자루 주인의 흉을 담는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안가서 앞자루가 가득하여 앞으로 넘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억지로 버티고 있는 일은 남이 담아준 뒷 자루의 양이 더 많다는 것이다. 성서에도 “남의 눈에 티끌을 두고 험잡는 자는 자기 눈에 걸친 들보는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교통위반을 하는 것은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남의 교통위반은 조심성이 없다고 나무란다. 감음하다 잡혀온 한 여인을 두고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그 여인을 “돌로 치라”고 명했는데 선생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어른부터 시작해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그 선생과 그 가운데 섰던 여자만 남았다고 한다. 시인 타골이 말하기를 “사랑은 이해”라고 했다. 상대방의 입장을 잘 생각하고 고려하면 이해도 되고 용서도 된다.
노랫가사 말에 “그 누가 나의 나의 괴롬을 알며 또 나의 슬픔을 알까. 나 자주 넘어집니다. 나 슬픈 일 당합니다. 나 자주 유혹 당합니다. 그리고 나 자주 실패합니다. 괴롭습니다. 걱정많습니다. 그 누가 나의 괴롬을 알며 또 나의 슬픔을 알까?” 인간은 나약해서 그리고 변덕스러워서 넘어지고 쓰러진다. 한자의 사람인(人) 자는 서로 기대고 받혀주는 형상의 글자이다. 내가 귀하면 당신도 귀하다는 마음만이 오직 해결점이다. 우리 모두 자신에 먼저 정직하자. 그것이 답이다.
손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