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활에 여유가 없다. 모두가 바쁘고, 급하며 서둘면서 살아간다.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이 없을 만큼 사는 일이 쫀쫀하다. 그런 시대가 지나면 노한기가 되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은 여생을 할 일 없이 보낸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걷다보니 과거의 추억은 바쁘게 살아온 고생뿐이다. 옛말에는 “고생 끝에 낙(樂)이 온다”고 했지만 요금은 그것이 아니다. “고생 끝에 골병든다”고 한다. 경로당에 가면 공통으로 오가는 말이 “젊었을 때 게으른 자가 늙어서는 보약”이 된다는 말까지 있다. 너무 한 곳에 집착하여 살았기에 도무지 여유라고는 전무한 상태였다. 급할수록 둘러가라고 지금이라도 자신을 위한 여유와 한가함을 누릴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생활습관은 고정적이다. 날마다 다니는 길이 같고 하는 일도 매일 반복되며 만나는 사람도 거의 같다. 요즘 시가지 변화와 주위 환경이 새로워 져서 출입하는 길도 낯설어 지고 있다. 환경문제가 대두되자 주거지 주변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집을 나서 산책하자면 강둑을 따라 소공원이 들어서고 거기엔 체육시설이 많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란 은행잎이 깔린 공원에는 낯선 사람들도 모이기 시작한다. 지름길이나 평상시 다니던 길을 피해 공기 맑고 쾌적한 자연을 찾아 에둘러서 가는 길이 행인의 발걸음을 당긴다.
우리말에 ‘에돌다’라는 말은 곧 바로 선뜻 나아가지 아니하고 멀리 돌거나 어떤 주위를 도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두르다’는 말은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둘러서 말하여 짐작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에둘러서 가는 길’이란 다소 멀기는 하지만 좋은 곳을 찾아 기분 좋게 다니는 길을 말한다. 에둘레길에는 수목이 있고 벤치가 있으며 포도에 낙엽이 쌓여 걷기는 너무 좋다. 그 길을 따라 나서면 간을 맞이하게 되고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둔치에는 항상 사색의 길이 이어진다. 하루일과에 시달리고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 한적한 곳을 찾다 보면 어느새 자연을 맞이하게 된다. 시원한 맑은 바람을 쏘이며 시야 먼 곳에 단풍이 유혹한다.
어느 시인의 말씀이 기억난다. “나는 이 우주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것들 사이를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거기서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사람은 걸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정해진 길을 마다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욕심으로 둘레길을 찾자. 산책이 건강을 위한 유리한 투자로 여기지만 정신적 건강이 앞서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각의 안정성을 계산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길이 바로 에둘러 가는 길이다.
손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