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이어령교수는 일본문화를 ‘축소 지향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은 무엇이든 조그맣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강과 산, 바다에서 바람에 풍화되고 물에 씻겨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돌을 수집해 그 속에서 대자연의 조화를 느끼고 형상에서 영감을 찾으며 교감한다. 때로는 험산준령이 돌의 형상에서 연상되고 모래를 깐 수반위에 얹혀 있는 돌은 절해고도가 되기도 한다. 집집마다 수석 몇점씩은 소장하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분재도 마찬가지다. 이때 쯤이면 집안에 있는 매화분에서 꽃망울이 터져 온 집안에 국향이 그윽해 완상의 묘미가 더해 진다. 온갖 나무들의 정장을 억제시키고 원하는 대로 형을 잡아 조그마한 분에 담아 감상하며 즐긴다. 무엇이든 작게 만들어 집안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 줄일대로 줄여보는 일본의 민족성은 그들의 주거환경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진이 잦은 지리적 환경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집은 채 20평이 안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선물도 ‘오미야케’라 하여 조그맣고 앙증맞다. 그들의 축소지향적 성향은 휴대용 라디오와 녹음기를 만들어 전세계 시장을 지배했고 무엇이든 작고 얇게 만드는데는 최고였다. 그러나 이러한 축소지향적 문화도 최근들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멋과 풍미로 여겨졌는 란을 즐기고 수석을 감상하며 분재에서 대자연을 느꼈던 정서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이가 든 층에서는 그래도 귀하고 좋은 분재와 난, 수석을 보면 탐을 내지만 젊은 층 마니아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대가 끊길 상황이어서 옛 명성을 잃고 제왕자리를 한국과 중국에 넘겨 준 상황이다. 그만큼 사회가 척박해지고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소지향적 문화는 결혼풍속도이다. 요즘들어 혼자사는 1인세대가 늘어나더니 이제는 ‘나시 혼’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시’는 일본 말로 ‘없다’는 뜻이다. 곧 결혼식을 하지 않고 바로 혼인신고만 하고 살림을 차리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토쿄도에서 결혼한 청춘남녀의 절반이 ‘나시 혼’을 선택했다는 조사보고가 있었다. 그 첫째 이유가 막대한 결혼비용이었다. 우리 돈으로 평균 7천만웡이 드는 비용이 아깝다는 것이다. 결혼식과 피로연을 따로 하는 일본의 결혼풍속도 싫고 결혼비용으로 다른 용도로 요긴하게 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식이 결혼식까지 생략하는 새로운 축소지향적 문화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흐름은 세계적 경제대국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유가 없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의 의식도 크게 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눈을 돌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혼자사는 1인 가정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결혼식만은 성대하다. 이번 주말에도 많은 사람들이 쉬지도 못한 채 축의금을 들고 예식장을 순례하는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순례족이 있는 한 우리에게 ‘나시 혼’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결혼축의금은 품앗이 성격을 띄고 있다. 과거에 받은 만큼 부조하는 십시일반의 미풍양속이라 할 수 있다. 결혼비용이 많이 들지만 혼수를 제외한 예식에 드는 비용은 축의금으로 충당하기에 적당한 수준이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을 의미있게 치러겠다는 것이 우리나라 청춘남녀들의 보편적 의식이라 인근 일본과의 문화적 간섭현상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특히 요즘은 한류바람을 타고 한국을 배우려는 일본인이 늘어나 오히려 우리의 문화가 일본에 스며들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들을 서울의 거리에서, 경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문화향기에 매료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는 일본에 부는 한류를 더욱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원래 일본은 우리문화에 젖어 온 터이다. 문화적 전통성이 허물어져 가는 일본에 한류는 신선한 충격이다. 일본 속 한류의 가속화가 올해의 트랜드가 되어야 한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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