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라 하면 용모와 학식을 두루 갖춘 사람을 일컫는다. 고고한 인품에 언행에 있어서 매우 신중하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학자다운 인품(人品)을 먼저 겸비해야만 한다. 평민과는 달라 어디선가 품위가 있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자라야 한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고을마다 서원(書院)이 있고, 거기에 배출된 서생(書生)들이 많아 존경의 대상이 되고 했다. 수년간 학문을 위해서 가정을 떠나 먼 곳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고, 가정과 가족을 멀리하고 오로지 학문연마에만 많은 시간을 바치게 되고, 돈하고는 정말 거리가 먼 선비들이 많았다. 시대가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선비는 올곧은 언행에 품위와 지식을 겸비한 겉모양이나 자세가 학같이 고결한 인품을 지닌 양반으로 생각된다. 논어의 자로편에 보면,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선비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님의 대답은 “언제나 수치심을 가지고 자기의 언행을 욕되게 하지 않고 사방에 외교 사절로 나가면 임금이 명한 바 사명을 다하여 왕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 다음 가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공자의 대답은 “일가 친족들로부터 효자란 칭찬을 받고 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우애롭다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다” 자공이 “그다음은요?” 하고 물었다. “말하면 반드시 실행하고, 실행하면 반드시 성과를 거두면 딱딱하고 강직하기만 하여 소인이라 하겠으나 그래도 역시 그 다음쯤은 갈 수 있는 사람이다” 하고 대답했다. 선비는 명예를 위해서 죽음을 아끼지 않는다는 뜻에서 “백성은 이득이 있는 곳에 모이고 선비는 명분이 있는 곳에 죽는다”고 한다. 선비의 정신을 학(鶴)에 비유한다. 품격이 고귀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우리에 갇힌 생활, 오늘 하루가 또 저무는데/물 건너 송림 시야가 열린다/만리 창공을 날고 싶은 마음을 가을 바람에 움츠리고/쓸쓸히 저녁놀에 서서/푸른 이끼만 쫀다”는 학에 관한 시이지만 그 속에는 역시 선비의 인품이 내포돼 있다. 학은 새 중의 신선이라고 한다. 모습을 보면 속세의 어지러움을 잊게 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아름다운 음악보다도 더 신비롭다. 바람이 불면 마주 어울려 춤을 추고 달 밝은 밤이면 홀로 노송가지에 앉아 잠을 자는 등 모두 격이 높고 고고한 자태이다. 학, 학은 선비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 하늘을 나는 하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선비 논 데 용나고 학이 논데 비늘이 쏟아진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사람의 행적과 착한 행실은 반드시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손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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