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비대위원장이 드디어 민주통합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20일 열린 방송기자토론회에서였다. 빅위원장은 작심한 듯 “심판을 받아야 할 집단이 심판을 하겠다고 나서니 적반화장”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폐족’이라며 한껏 자세를 낮추던 그들이 아니냐며 반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은 TV화면을 통해 박위원장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고 참석자들도 일순 놀란 표정이었다.
민주통합당은 이미 정권심판론과 책임론, 부정부패를 총선 이슈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5년간 이명박정부와 이 정권이 추진해온 일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선거에서 이기면 국정감사와 청문회를 실시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한발 더 나아가 한미FTA는 폐기하겠다고도 했다. 4대강 살리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새누리당이 국민의 따가운 시선속에 비상체제를 가동, 당명까지 바꾸며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는 동안 야당은 일찌감치 선거전략을 수립,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새누리당으로서도 이제는 국면전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도 도리없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場)이 될 공산이 커졌다. 지금까지 보와왔듯 심판론은 서로가 잘잘못을 따지며 책임을 상대방에게 미루는 것이 대수였다. 그때마다 갖가지 의혹과 부정부패가 양산되고 확인되지 않은 루머로 온 나라가 한바탕 질풍노도(疾風怒濤)에 휩싸이고 국론은 갈귀갈귀 찢긴다. 상대무리를 매도해야 우위에 선다는 인식은 죽기살기의 양상을 띄고 수많은 선거사범을 만들어 낸다. 이번 총선도 누가 심판의 대상이냐로부터 시작, 4대강 살리기와 한미FTA, 대통령친인척 비리등 각론에 들어가면 피터지는 혈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봤자 결론은 뻔하다. 뻘판에서 전투를 했으니 누구의 옷에 뻘이 더 묻었느냐로 귀결될 것이다. 국민들은 이런 이전투구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지만 그댓가는 너무 크다.
사실 심판론의 속을 들여다 보면 그 자체가 무리수라는 생각이 없지 않다. 야당은 이명박정부와 현정권의 지난 4년을 실정의 연속이라고 규정짓지만 그동안 나타난 여론의 추이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4대강사업이 마무리단게에 이르면서 사업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지지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새로 조성된 수변공간이 긍정적이고 홍수조절기능도 한꺼번에 많은 예산을 들여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다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으나 심판할 정도는 아니다는 것이다. 한미FTA도 그렇다. 서민들이 값싼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기업은 경제영토가 넓어지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있느냐는 여론이 형성되고 달리 선택의 길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 현실적 상황이다. 물론 각론에 들어가면 문제가 없지 않지만 큰 흐름은 그렇다는 것이다.
심판론은 어쩌면 총선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정작 필요한 정책선거를 희석시킬 수 있다. 사실 이명박정부의 최대 실정은 소통부재와 인재등용, 부정부패가 아닐까. 소통이 제대로 안돼 계층간 세대간 갈등이 더 깊어지고 빈부간 격차를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오히려 적확할 것이다. 친인척, 고위공직자. 청와대 깊은 곳까지 파렴치한 부정부패로 얼룩졌으니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권초부터 지금까지 ‘고소영'으로 일관해와 그 또한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향후 우리가 살 수 있는 먹거리를 장만하는 일이다. 이번 총선에는 그동안 경륜을 쌓아온 백가(百家)들이 쟁명(爭鳴)하는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저마다 경국지책(經國之策)을 내놓고 21세기 한반도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세계적 경제대국들이, 우리가 일찍이 선진국이라며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나라들이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을 보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 5천만, 나아가 남북 7천만이 살 수 있는 경국지책을 말하는 것이다. 정책선거기 실종되면 우리는 또 그렇고 그런, 그래서 심판해야 할 인물을 우리의 대표로 뽑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변 린(객원논설위원.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