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경론사회에 살다보니 상대가 생기고 적이 생긴다. 나보다 잘 된 사람을 험담하고, 나보다 못난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질투하고 늘 원수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래서 ‘사촌이 논사면 배아프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성서에도 보면 “남의 눈에 티끌은 흉이 되고 자기 눈에 대들보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는 남을 절대 비방하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도 결점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은 눈만 뜨면 남의 얘기를 한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흉보고, 험담하며 남을 무시하고 결국에는 자기자랑에 열을 올리고 우쭐하게 여긴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남이 더 잘안다. 잘못된 것은 남의 탓으로 잘된 것은 자기 탓이라 한다.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사고에 대해서 나의 탓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짙다. ‘탓’이란 일이 그릇된 까닭이나 원인을 말하며 잘못된 것을 나무라거나 원망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허물’은 그릇 저지른 실수나 과실(過失)을 가리킨다. 연초에 불교계의 좌상이 되시는 한 스님이 ‘자기 반성의 목소리’가 세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다. “남의 탓 하지 말고 우리 허물부터 돌아보자”고 한 것이다. 우리가 서로간의 갈등과 다툼이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허물에서 기인함을 깊이 각성하자는 말씀이다. 남을 탓하고 밖의 허물을 구실삼기보다 나 자신을 질책하고 속으로 들여다보고 바로 세워야 할 때임을 자인 했다. 모든 국민들이나 단체는 스스로의 반성과 정화로 다시 태어나는 정신운동으로 5가지 제안을 한 것이다.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 단체의 결의를 위한 5대 결사(結社)운동을 불교 본연의 모습을 찾는 수행결사, 민족문화를 스스로 보호해 나가는 문화결사, 생명과 환경의 가치를 실현하는 생명결사, 스스로 이웃과 사회와 함께 나누는 나눔결사, 이웃 종교 간의 평화, 남북평화, 세계를 위한 평화결사 등이다. 많은 이들이 공감이 가고 찬사를 받을 수 있는 결의에 존경심을 보낸다. 허물없는 곳이 없으니 모든 것을 다 용서하자는 것이다. 허물은 자기에게 있을 때는 보이지 않으나 남에게 있으면 곧 눈에 띌 뿐 아니라 비평하게 된다. 법구경에도 “남의 허물만 꾸짖지 말고 힘써 내 몸을 되살펴 보자. 사람이 만일 이렇게 깨달으면 그 때문에 다투는 일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 했다. 작은 허물도 덮어두지 않으면 큰 허물이 되고 나중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깊은 과오와 상처가 된다. 남의 흉하기는 식은 죽 먹기요, 남의 자식을 흉보지 말고 내 자식이나 잘 가르쳐라. 우리 속담에도 깨어진 냄비와 꿰맨 뚜껑, 흉과 허물은 다 있다. 용서로 덮자는 것이다. 손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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