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생존을 위한 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남과 같아서는 앞자리에 설 수 없고,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재물에 욕심을 가지고, 정치에는 선두를 위한 치열한 웅변을 중시하고, 기업은 많은 자회사를 거느려 자기 식구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인간사회에서도 자기의 사람을 한데 모으고, 동지로 삼고, 인맥을 형성한다. 특히 스포츠에 있어서는 목숨을 걸 정도로 앞서기에 전력을 기울인다. 특히 생산품에 있어서는 날마다 연구하고 실험하며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 특허를 내어 기업의 총수가 되길 원한다.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힘과 기능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이 근본적이다. 어쩌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경쟁이고 선한 싸움이고 평화가 있는 전쟁이라 그런지 치열하다. 민심이 흉흉하고 각박할 만치 사회가 요란하고 잔인해져 간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칙아래 바로 생존이 경쟁이다. 생물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투어 벌이는 경쟁으로 그 결과 적자(適者)는 살아남고 그러지 못한 것은 도태되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동물의 세계를 보면 먹고, 먹히는 장면들이 우리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악착같은 느낌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필요한 것이고 운명처럼 맞이해야 한다.
정치적 경쟁은 군사적 연습이 그러하듯이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연습과 실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쟁심은 재능의 양식이고 선망과 경쟁심의 차이는 악덕과 미덕의 차이와 같다고 했다. 경쟁은 인생의 법칙이다. 스포츠도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이요, 싸움이다. 오히려 우리의 삶보다 더 철저하고 냉정하다. 아픔과 시련이 뒤따르고 쾌감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경쟁심이 악덕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경쟁의 세계에는 단 두 마디 말 밖에는 없다. -이기느냐, 지느냐, 사회의 모든 분야가 경쟁이다. 학교에서 출발한 경쟁이 사회를 거쳐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며 주위의 사람들은 그 싸움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가 가세하고 업자끼리 상대하며 가장 친한 친구에 까지 서열을 장악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철학자 신인철의 ‘정칙과 반칙’이라는 글에서 “승부를 다투는 경쟁의 세계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非情)의 세계다. 그것이 아무리 비정하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경쟁이 없는 세계, 승부를 다투는 일이 없는 세계는 얼마나 무미건조하며 발전과 우열이 없는 세상이 된다”고 한 것이다. 나무는 다른 나무와 섞여질 때 한층 더 잘 타며 경쟁상대의 장점을 시인하고 들어가면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