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많이 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옛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던 것들도 많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선배로 하여금 권유한 여러 종류의 책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릴 때 제일 먼저 읽는 것이 만화이고, 위인전이며, 전설이 나열된 역사책, 그다음이 명작 소설이다.
요즘처럼 영화나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에는 누구나 한번 씩 애정소설이나, 삼국지 같은 책이 거의 전부였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재미있는 소설이 소개되면 수십 명이 돌아가면서 읽고, 거기에 감명이 깊은 스토리가 담긴 이야기책이면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외국의 서적이 번역되어 독서의 폭이 넓어졌고, 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불후의 역작을 남기면서 독자의 범위도 넓어졌다. 정심분석 연구로 자기 탐구의 길을 개척한 대표작 ‘데미안’은 독일 출신의 스위스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다. 많은 젊은이들은 ‘데미안’을 가리켜 ‘청춘의 바이블’이라 한다. 또한 그는 20세기의 ‘문명비판서’라고 할 수 있는 미래소설 ‘유리구슬 유희’를 발표해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데미안은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상을 입은 청년의 수기 형식으로 돼 있으며 싱클레어 즉 헤세가 연상의 친구인 데미안의 인도를 받아 정신착란 상태를 벗어나 ‘이 세상의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이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로지 내면의 길을 파고드는 과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패전으로 말미암아 혼미상태에 빠져있던 독일의 청년에게 대단한 감명을 줬으며 문학계에도 일대 바람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헤세는 14세 때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규칙적인 생활이 체질에 맞지 않아 중퇴했다. 훗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수레바퀴 밑에서’를 썼다. 한 때 서점의 점원으로 일하는 동안 많은 책을 읽었고 창작도 했다. 그는 서정성이 짙은 신(新) 낭만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출발했으나 자전소설 ‘데미안’은 현실에 대결하는 영혼의 발전을, ‘싯타르타’에서는 자신의 세계관과 인도철학을 조회시켜 놓았다. 토마스 만과 더불어 현대의 독일의 최고의 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85세에 작고했다.
‘데미안’은 전쟁이라는 시대적인 위기와 막내아들의 중병, 아버지의 죽음, 아내의 정신병 등 가정적인 위기에 직면하는 가운데 정신분석학적 수법을 빌어 내면에 응집함으로써 기성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자아와 주변의 불일치 속에서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느낄 수 있듯이 그의 문학은 인생의 발자취와 더불어 그 세대에 절실한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큰 감동을 안겨준다.
손경호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