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화해하지 못한 일에서 생긴다. 화해란 말이 마음의 고민이나 다툼질을 그리고 서로의 감정을 푸는 것으로 서로가 양보하는 행위이다.
학자요, 사상가인 앙드레 지드가 말했듯이 “지난날의 원수와 화해한 일은 비급한 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명한 처사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움”이라고 했다.
몽테뉴의 수상록에도 “자연이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먼저 권고한 것은 서로 화합하는 것” 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관계 속에 제일 먼저 상처로 남는 것이 갈등이라 한다.
갈등을 푸는 일은 화합이요, 화해이며, 용서요, 사랑이다. 맹자도 “화합이 최고의 무기”라 했으며 갈등의 기쁨이 화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갈등이란 말이 있다. 갈(葛)은 칡 넝쿨을 의미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왔다. 일이 복잡하게 뒤얽혀 풀기 어려운 형편과 견해나 이해(利害) 따위의 차이로 생기는 불화에서 생긴다. 그리고 마음속에 두 가지 이상의 욕구 등이 동시에 일어나 갈피를 못잡고 괴로워하는 상태를 말한다.
주로 산에서 많이 자라는 칡과 등나무의 형태를 보면 잘 이해가 간다. 이 두 나무는 자라면서 서로 몸체가 비틀면서 엉키고 가까이에 있는 식물에 붙어 몸을 조이며 못 살게 하는 특성이 있다.
마음에 외로움이나 괴로움이 생기면 겉잡을 수 없이 난잡스러움에서 마음의 생각도 뒤엉켜 버린다. 사람의 고민이나 걱정에 빠지면 근심이 생긴다.
성서에도 보면 “마음이 즐거우면 앓던 병도 낫고 속에 걱정이 있으면 뼈도 마른다”고 한다. 근심에도 천태만상의 유형이 있다. 그래서 가벼운 근심은 말이 없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걱정거리가 얼마나 우리에게 타격을 주었던가.
세상일은 마음먹고 생각하기 나름이란 말도 있으며 사람의 의지에 따라 걱정의 차이도 있다. 손뜨개질이나 되는 것처럼 여자들은 걱정거리를 안고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성격에 따라 근심을 아예 매달고 사는 사람들도 흔히 본다. 그리고 남의 고민을 자기 것 인양 쓸데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걱정이 많으면 만사가 귀찮아 진다. 잠도 오지 아니하고 먹기도 싫고 죽고 싶어하는 마음만 늘 근심의 주위를 돌고 있다. 가까운 친지나 친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온다.
‘시경(詩經)’에 백 가지 시름, 걱정하면 마음만 어두워지고 마음은 근심으로 얽혀져서 빨지 않은 옷과도 같다고 했다. 근심 걱정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며 깊은 뜻이 없을 때는 근심도 없고 큰일을 생각하고 보면 근심도 많아지는 법이다.
근심은 인생의 적이란 말도 있으며 나이는 백세인데 근심은 천세다.
손경호 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