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22, 고려대)와 함께 손을 잡고 만원 관중이 들어찬 링크 위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면.
모든 피겨팬의 소망이자 꿈을 이뤄낸 배성용(31) 씨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흥분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김연아의 손을 잡고 등장한 행운의 주인공, 배 씨는 OSEN과 전화 통화에서 그 순간의 감동을 아낌없이 전했다.
'E1 올댓스케이트 스프링 2012'가 지난 6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 아이스링크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피겨여왕'과 함께 한 3일 간의 짧은 꿈은 환호와 박수 갈채, 그리고 눈물 속에서 아름답게 끝났다.
그러나 화려한 출연진과 다채로운 이벤트, 그리고 김연아의 무대가 안겨준 감동은 그 동안 갈증에 목말랐던 피겨팬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아이스쇼에서는 팬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매 공연 오프닝마다 팬과 선수가 함께 등장하는 동반 입장 이벤트가 바로 그것. '나도 선수다'라는 이벤트를 통해 미리 선발된 팬은 경기 당일 추첨을 통해 파트너를 배정받고 리허설을 거친 후 선수들과 함께 꿈의 무대에 입장했다.
단연 모두의 관심사는 김연아의 손을 잡고 등장할 행운의 주인공이 누군지에 쏠렸다. 마지막 날 공연에서 김연아와 함께 등장한 배성용 씨는 "공연 전날부터 잠도 제대로 못잤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말 김연아 선수인지, 실제 인물이 맞는지 싶더라"며 꿈만 같았던 순간을 회상했다.
배 씨는 '피겨 광팬'이다. 지난 2008년 '페스타 온 아이스(Festa On Ice)'를 처음 본 이후 김연아와 피겨에 매료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스쇼 관람을 빼먹은 적이 없다. 보는 것만으로 부족해 2년 전부터 피겨를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 해부터는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를 전부 보러 다녔다. 퇴근 후 매일 저녁 8시부터 1시간씩 피겨를 타는 것이 배 씨의 일상이다.
배 씨가 처음 본 아이스쇼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김연아의 팬이자 피겨팬으로서 배 씨는 "이제까지 봤던 모든 영화나 뮤지컬, 연극, 콘서트 이런 모든 공연 컨텐츠를 통틀어 가장 멋진 쇼가 아이스쇼라고 생각한다"고 아이스쇼를 극찬했다.
그런 배 씨에게 있어 이날의 경험은 평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한 특별한 '사건'이었다. "항상 B석만 끊어서 보다가 무대에서 같이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는 배 씨는 "리허설 때는 실수 없이 잘 해냈는데 실전에서 잘 못한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며 웃었다.
모든 피겨팬의 꿈인 김연아의 옆자리에 선 소감에 대해 배 씨는 "이상하게 아침부터 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마법처럼 추첨에서 김연아 선수가 파트너가 되자 '내가 왜, 어떻게 여기에 있나' 싶은 기분도 들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며 그 순간을 떠올렸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김연아가 말을 걸었다. "스케이트는 얼마나 타셨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둘은 동작을 맞췄다. 꿈만 같은 순간들이었다. "금방 적응한다"고 칭찬도 들었다.
2번의 리허설을 마치고 오프닝까지 대기하는 동안 배 씨의 주위에는 그토록 동경하던 '피겨 선수들의 세계'가 펼쳐졌다. '스핀의 황제' 스테판 랑비엘이 준비하고 있었고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인 패트릭 챈이 몸을 풀며 파이팅을 외쳤다. 선수들이 느끼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그래서 배 씨는 더욱 더 김연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금메달을 딴 훌륭한 선수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스케이트를 통해 나같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사람들에게 즐거운 쇼를 만들어준다. 후배들을 위해 피겨 환경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김연아는 여전히 훌륭한 스케이터"라는 배 씨의 말에서 피겨팬이 김연아를 바라보는 응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짧았던 꿈같은 순간이었지만 배 씨는 "김연아 선수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손을 잡고 또 함께 스케이트를 탔던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비록 내가 실수를 했지만(웃음) 너무나 좋은 기억이고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맺었다.
9개월 만에 돌아온 김연아의 아이스쇼는 짧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처음으로 시도한 관중 동반 입장 이벤트는 피겨를 사랑하는 팬의 마음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했다. 돌아올 8월, 새 아이스쇼를 예고한 김연아가 또 어떤 공연과 이벤트로 찾아올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