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처럼 좋은 소식에 귀가 솔깃했다. 지방대학에 다녀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기업이 신규 채용한 신입사원 가운데 지방대 출신이 10명 중 4명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지방대생은 아예 시험칠 기회조차도 주지 않고 서류전형에서 탈락시킨다고 알고 있는 지방사람은, 이렇게 많이 대기업에 채용된 데 대해 놀라울 따름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 20개사를 대상으로 ‘대학 소재별 채용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해 전문대를 포함해 대졸 신입사원 2만 5751명 중 42.3%인 1만 885명이 지방대 졸업자라고 발표했다. 지방대학 출신 채용은 2009년 4천107명에서 2011년 6천301명으로 53.4% 증가한 반면, 수도권 대학 출신 채용은 2009년 9천185명에서 2011년 1만 2천220명으로 33% 늘어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지방사람에게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만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요즘같이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에 대학생의 선망의 대상인 대기업에 지방대생이 많이 채용된 것에 대해 잘 믿기지가 않는다. 대기업에 취직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 데, 10명 중 4명이 지방대생이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지금까지 부모들은 집안 형편이 어렵더라도 자녀를 대기업에 취직시키기 위해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지방대는 서울 소재의 대학보다 취직하는데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다고 알기 때문에 부모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자녀들을 서울의 대학에 보내려고 지금도 무척 애쓰고 있다. 전경련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제는 굳이 빚을 내면서까지 서울로 유학을 보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지방대에도 우수한 인재가 모이고, 지방의 발전도 가속화 돼 지역균형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경련의 발표가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부 언론에서는 전경련의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는 비판기사를 내놨다. 지방대 출신에 카이스트와 포항공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지방대학 출신의 대기업 채용은 전경련의 발표와는 차이가 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어떻게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지방대학에 포함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카이스트는 대전에, 포항공대는 포항에 있기 때문에 지방대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공계 특화대학인 두 대학을 지방대학에 포함시켜 대기업에 지방대학이 많이 채용됐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무리한 발상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전경련이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지방대에 포함시켜 채용 통계를 발표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난해 카이스트의 학부생 대기업 취업률은 45.7%이나 대학원의 취업률은 90%인 1천여 명의 이상이 취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공대도 학부생의 취업자는 60여 명이나 대학원의 경우 300여 명 이상의 졸업자가 대기업에 취업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대기업 취업자 수에서 빼면 실질적으로 지방대학생의 대기업 취업률은 훨씬 낮아지게 된다. 전경련이 비난을 감수하고서도 이런 발표를 한 것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대선주자에게 생색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지역 인재 채용비중을 30% 이상으로 맞출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주요 20개 기업들의 지난해 채용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았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지방사람은 전경련의 이런 행동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지방대학에 다녀도 열심히 노력만 하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는 자녀들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번 발표는 지방사람은 안중에 없고, 오직 힘 있는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전경련의 숫자놀음에 지방사람이 놀아난 꼴이다. 앞으로 전경련의 발표에 어느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전경련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동반성장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대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사회 양극화에 앞장선 전경련은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많은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전경련은 국민들의 정서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반성하는 차원에서도 지방사람에게 사죄해야 한다. 이런 자료를 만들어서 지방사람을 우롱할게 아니라, 귀중한 시간을 일자리 하나라도 더 만드는데 쏟기를 바란다. 박노봉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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