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귀환, 그리고 라이벌의 재기. 이보다 더 잘 짜여진 각본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김연아(23, 고려대)와 아사다 마오(23, 일본)의 맞대결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둔 피겨계가 후끈 달아올랐다. 시작은 역시 '피겨여왕' 김연아였다. 1년 8개월의 공백을 깨고 복귀전 첫 무대인 NRW트로피에서 단숨에 200점을 돌파하며 화려한 부활을 신고한 김연아의 존재는 침체에 빠져있던 여자 피겨계를 흥분시켰다.
비록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대회가 아니었다고 치더라도 김연아의 기록은 의미가 깊었다. NRW트로피에서 김연아가 달성한 점수는 종합 201.61점. 올 시즌 여자 싱글 스케이터 그 누구도 200점의 벽을 넘은 사람이 없다는 점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 충분한 점수였다.
쇼트프로그램서 72.27점을 받으면서 올 시즌 여자 싱글 스케이터 중 최고점을 기록한 김연아의 존재에 자극을 받은 이는 바로 아사다였다. 아사다는 NRW트로피와 같은 기간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하고도 김연아의 복귀에 밀려 조명을 받지 못했다.
김연아의 복귀에 자극을 받은 아사다는 일본 언론을 통해 몇 번이고 "트리플 악셀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바 있다. 트리플 악셀은 김연아와 경쟁하던 당시 자신의 전매특허로 내세웠지만 성공률이 극히 낮아 최근에는 사실상 프로그램에도 넣지 않았던 기술이다. 점프의 완성도에서 김연아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아사다가 트리플 악셀을 다시 시도한다는 소식에 일본에서도 조소 섞인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아사다는 1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서 쇼트프로그램 74.49점, 프리스케이팅에서 130.96점을 기록하며 총점 205.45점으로 김연아의 시즌 최고점(201.61점)을 뛰어넘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프로그램 모두 트리플 악셀을 넣은 구성이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아사다는 프리프로그램에서는 랜딩에 실수를 범하며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쇼트프로그램과 프리프로그램, 총점에서 모두 김연아의 시즌 최고점을 경신하며 자신감을 한껏 찾은 모양새다.
아사다는 4대륙 선수권대회 우승 후 "회전수 부족 판정을 받긴 했지만 이 점프가 다음 세계선수권대회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훈련만 잘 한다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며 오는 3월 있을 세계선수권대회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을 내비쳤다. 사실상 김연아와 맞대결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일본 역시 김연아와 아사다의 맞대결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일본 취재진이 직접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와 맞대결을 하는 점에 대해 물었을 정도.
하지만 아사다는 "이번 대회의 결과로 나 자신의 레벨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이상으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김연아는 물론 많은 선수들이 모이는 대회이기 때문에 목표를 잊지 않고 나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써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 등이 가능하도록 연습하겠다"며 김연아와 맞대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다.
올 시즌 여자 싱글 스케이터들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피겨계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았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애니 로셰트(캐나다), 미라이 나가수, 레이첼 플랫(이상 미국) 등 많은 선수들이 은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율리아 리프니츠카야,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이상 러시아) 애슐리 와그너(미국) 등이 새로 등장했지만 기량 면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복귀와 아사다의 트리플 악셀로 인해 '김연아-아사다 라이벌전 시즌 2'가 개막하면서 은반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복귀에 성공한 피겨여왕과, 재기에 성공한 2인자 아사다의 맞대결이 오는 3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