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이 생길 수도 있는 환경이지만 류현진(26, LA 다저스)은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급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천천히 하나씩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장기 레이스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MLB) 데뷔 후 7경기에서 3승2패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했다. 43⅔이닝을 던지며 팀 동료이자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48⅔이닝) 다음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48개의 탈삼진, 1.21의 이닝당출루허용률(WHIP)도 역시 커쇼 다음이다. 잭 그레인키가 쇄골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실질적인 다저스의 2선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조금 부담스럽다. 팀 사정이 워낙 좋지 않은 탓이다. 다저스는 7일(이하 한국시간) 애리조나전에서 패하며 지구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타선은 득점권 상황에서의 빈약함을 이어가고 있고 불펜도 불안하다. 여러모로 선발 투수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찌됐건 팀 내에서는 ‘신입생’ 격인 류현진으로서는 더 어려운 환경일 수 있다. 스스로도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을 만하다. 고국에서는 자신의 등판 때마다 엄청난 관심이 모인다. 잘 던진 날은 칭찬이 쏟아지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그 반대의 분위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욕심도 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좀 더 치고 나간다면 다저스 선발진에서의 위상이 더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현진은 시즌 시작할 때나 한 달이 지난 지금이나 똑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다잡고 있다. 류현진은 6일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된 이후 “2사 후 득점 상황, 그리고 (4타점을 허용한) 펜스와의 승부가 아쉬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변명 없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경기가 남아 있다. 아직은 시즌 초반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중요한 대목이다. 스스로의 말대로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결과에는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당장의 성적은 좋아질 수 있어도 장기 레이스에서 버티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직 류현진은 20경기 이상을 더 나서야 한다. 페이스를 급격하게 끌어올리기보다는 자신의 보폭대로 전진할 필요가 있다. 오버 페이스도 금물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할 시절 류현진의 시즌 운영 능력은 단연 으뜸으로 평가받았다. 경기에서처럼 때로는 느리게, 치고 나갈 때나 필요할 때는 맹렬하게 시즌을 운영하곤 했다. 장기적인 목표를 바라보는 시선은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여유가 있기에 가능했다. 물론 메이저리그의 수준은 그보다 더 높지만 류현진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7경기에서 이미 3승을 따냈다. 굳이 급할 필요가 없는, 또 현재의 흐름대로 묵묵히 가도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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