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국 윔블던이 '대이변의 무대'가 됐다. 최정상급 선수들이 줄줄이 탈락하는가 하면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이 대회 우승 트로피의 단골 주인이었던 로저 페더러(32·스위스·세계랭킹 3위)와 미녀 테니스 스타 마리아 샤라포바(26·러시아·세계랭킹 3위)가 2회전에서 짐을 쌌다. 여자 세계랭킹 2위 빅토리아 아자렌카(24·벨라루스)도 부상으로 기권했다. 페더러는 27일(한국시간)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2회전에서 세계랭킹 116위 세르게이 스타코프스키(27·우크라이나)에게 1-3(7-6 6-7 5-7 6-7)로 졌다. 유독 윔블던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던 라파엘 나달(27·스페인)의 1회전 탈락보다 페더러의 3회전 진출 좌절이 더 충격적인 패배라고 해도 관언이 아니다. 윔블던은 페더러의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메이저대회에서 17번 우승한 페더러는 윔블던에서만 7차례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페더러는 대기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 우승하면 그는 이 대회에서 7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피트 샘프라스(미국)를 넘어 사상 최초로 8번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회전에서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했다. 페더러가 메이저대회에서 3회전에 오르지 못한 것은 2003년 프랑스오픈에서 1회전 탈락한 이후 10년만이다. 윔블던에서는 2002년 1회전 탈락 이후 11년 만에 당하는 '수모'다. 2004년 윔블던부터 올해 프랑스오픈까지 8강에 페더러가 이름을 올리지 못한 적은 없다. 이날 패배와 함께 그의 36회 연속 메이저대회 8강 진출도 끝났다. 페더러는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간단하다. 돌아가서 열심히 훈련하면 되는 것이다"며 "나는 무언가 해내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좋은 여름을 보내고 싶었다. 확실한 것은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6회 연속 8강에 진출하다가 갑자기 조기탈락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아직 몇 년 더 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페더러를 꺾은 스타코프스키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에서 4번 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2010년 9월에는 세계랭킹 31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대이변을 만들어낸 스타코프스키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마법이다. 페더러가 강한 잔디코트에서 그를 꺾었다. 그는 위대하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선수로 칭찬받는다"며 "내가 더 잘 한 것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자단식에서도 페더러의 탈락 못지 않은 이변이 발생했다. '흑진주' 세레나 윌리엄스(32·미국·세계랭킹 1위)와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샤라포바가 단식 2회전에서 세계랭킹 131위 미셸 라체르 데 브리토(20·포르투갈)에게 0-2(3-6 4-6)로 완패를 당했다.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샤라포바는 이날 경기를 치르다가 여러 차례 코트에서 미끄러졌다. 세 번째 넘어졌을 때 왼쪽 엉덩이에 부상을 입은 듯 보였던 샤라포바는 2세트 도중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기도 했다. 샤라포바는 잔디 상태에 대해 심판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샤라포바는 "한 경기를 치르면서 세 번씩이나 넘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조금 이상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코트 상태를 탓하고 싶지 않다. 잔디코트에서 경기하다가 넘어지는 선수들을 많이 봤고,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조절했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20세의 어린 선수인 브리토는 투어 대회에서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선수다. 아직 10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적도 없다. 브리토는 "정말 흥분되고 믿어지지 않는다. 충격을 받았고, 정말 흥분했다"며 "오늘 경기를 승리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외에도 이변이 속출했다. 이번 대회에 1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안나 이바노비치(26·세르비아)는 2회전에서 세계랭킹 66위 유지니 부차드(19·캐나다)에게 0-2(3-6 3-6)로 완패했고, 옐레나 얀코비치(28·세르비아·세계랭킹 14위)는 세계랭킹 97위 베스나 돌론츠(24·세르비아)에게 0-2(5-7 2-6)로 져 3회전에 나서지 못했다. 세계랭킹 9위 캐롤라인 워즈니아키(23·덴마크)도 페트라 체코브스카(28·체코·세계랭킹 196위)에게 0-2(2-6 2-6)로 완패, 3회전 진출이 좌절됐다. 부상으로 기권한 선수들도 대거 등장했다. 아자렌카는 플라비아 페네타(31·이탈리아·세계랭킹 166위)와의 2회전을 앞두고 1회전 도중 당한 무릎 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 지난 2년간 윔블던 4강에 이름을 올렸던 아자렌카는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봤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ATP 세계랭킹 7위 조 윌프리드 총가(28·프랑스)는 어니스트 걸비스(25·라트비아·세계랭킹 39위)와 남자단식 2회전을 치르다가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했다. 세트스코어 2-1로 앞서가던 총가는 왼 다리 치료를 받은 후 기권을 결정했다. 이번 대회 10번 시드를 받고 출전한 마린 실리치(25·크로아티아)도 왼 무릎 부상으로 아예 경기를 포기했고, 2006년 8강까지 올랐던 라덱 스테파넥(35·체코)도 2회전에서 3세트를 치르다가 왼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더 이상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나달을 꺾고 2회전 진출에 성공한 스티브 다르시스(29·벨기에)와 존 이스너(28·미국)도 각각 오른 어깨와 왼 무릎 부상 탓에 경기를 치르지 못하고 짐을 쌌다. 국제테니스연맹(ITF)은 "최근 45년 사이에 메이저대회에서 하루에 7명이 부상으로 기권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당혹스러워 했다. 이변이 속출하자 테니스 전설인 존 매켄로는 "오늘은 윔블던 역사상 가장 이상한 날(craziest days)"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달과 페더러가 일찌감치 짐을 싸면서 남자단식 우승 대결은 '황태자' 노박 조코비치(26·세르비아·세계랭킹 1위)와 '영국의 희망' 앤디 머레이(26·세계랭킹 2위)의 대결로 압축될 것으로 보인다. 머레이는 이날 벌어진 2회전에서 세계랭킹 75위 루옌순(30·대만)을 3-0(6-3 6-3 7-5)으로 완파하고 3회전에 합류했다. 머레이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처음 영국 선수의 남자단식 우승을 노리고 있다. 여자단식에서는 윌리엄스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올라서게 됐다. 굵직한 선수들이 조기 탈락하면서 윌리엄스의 우승을 저지할만한 인물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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