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 고유섭 선생이 누군지 아는 경주시민은 흔치 않다. 우리나라 미술사를 학문적 경지로 끌어올린 선각자이고 일제의 내선일체 문화정책에 항거한 지조 높은 항일 학자다. 그가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기린 시와 수필이 비석이 되어 보존되고 있다는 것도 시민들은 알지 못한다. 감포읍 대본3리 동해구에 있다. 이 기념비들이 문무왕 수중릉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중간에 대종천이 흐른다. 고유섭 선생의 정신이 새겨진 기념비가 제자리에 앉은 셈이다. 그런데 이 의미있는 시선을 가로막는 시설물이 지난 2010년에 섰다. 그것도 생활오수를 정화하는 하수처리장이다. 도대체 바른 정신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가. 담당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법의 잣대로 판단할 문제인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다. 법보다 우선돼야 할 도덕성이 문제다. 문제는 이 기념비를 관리하는 전담부서가 없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황수영 박사가 사재를 털어 매입한 80평의 부지에 조성한 이 기념비 공원은 훗날 경주시에 기증됐다. 고미술사학회에서 재산을 인수받으려 했으나 황 박사는 재단법인보다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것이 훨씬 더 믿음성이 간다면서 경주시에 쾌척했다. 하지만 황 박사의 예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황 박사의 유족이 우현 선생의 유족이 경주를 방문해 기념비 앞 하수처리시설에 대해 항의하자 시장은 임시방편으로 공원 이전을 약속했다. 대본항 횟집을 정리해 대규모 공원을 만들고 거기에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시장의 머리에만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도시계획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문화는 안목이다. 경주는 한국 문화의 중심이다. 안목을 높여야 한다. 동해구라는 중요한 신라문화 성지에 하수처리장이라니. 물론 첨단 시설로 지어졌다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따져봐야 했다.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더라도 행정에서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차곡차곡 놓친 것들을 가다듬고 미처 팽기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정돈할 때다. 그래야 경주가 우리 고대문화의 본향이고 미래를 열어가는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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