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그랜드슬램 도전에 실패했던 박인비(25·KB금융그룹)가 경기 후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인비는 5일(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장 올드코스(파72·6672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브리티시여자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6타를 잃어 최종합계 6오버파 294타 공동 42위로 대회를 마쳤다.
앞선 3개의 메이저 대회를 모두 휩쓸고 여자골프 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노렸던 박인비의 위대한 도전은 이번 대회에서 잠시 멈췄다.
누구보다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가 컸을 박인비는 경기를 마치고 난 뒤 그동안 못다 전한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 보였다. 박인비 스스로도 처음 마주한 감정의 맨얼굴은 아쉬움이었다.
그는 경기 후 가진 LPGA 투어 공식 인터뷰에서 "어제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경기를 다시 하고 싶다. 스스로 강한 바람을 이겨낼 준비가 돼 있었다. 4개 홀에서 바람이 강했는데, 그런 가운데도 컨디션은 매우 좋았고 내 게임에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결국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내 플레이는 너무 나빴다"고 고개를 저었다.
박인비는 선두에게 3타 뒤진 채 따라붙었던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에서는 1타를 잃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여느 때보다 중요성이 커진 3라운드에서의 회복이 절실했지만 경기 중단으로 흐름이 끊겼다.
3라운드 경기 시작과 함께 강한 돌풍이 코스를 덮쳤고 박인비가 4번홀을 마치자마자 경기 중단이 선언됐다. 3번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잃은 타수 회복에 본격적으로 나서던 찰나였다. 박인비가 꼽은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하루를 보내고 재개된 3라운드에서는 이미 상승세가 꺾였다. 버디 1개, 보기 3개를 묶어 2타를 잃었고 선두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박인비가 꼽은 두 번째 아쉬운 순간은 1라운드 후반홀이었다. 12번홀 티샷이 흔들린 그 순간이었다. 비록 파로 막기는 했지만 한 번 어긋났던 스윙에 대한 생각은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고 장기인 퍼트까지 흔들리는 요인이 됐다.
그는 "1라운드 후반홀로 돌아간다면 몇 개의 드라이브 샷 실수를 바로잡고 싶다. 정말이지 드라이브 샷 을 실수한 것이 자꾸 떠올라서 한동안 그린 위에서 힘든 경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3~4라운드에서는 많은 스리퍼트와 포퍼트를 했다"며 "하지만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많이 배워야 하고 개선의 여지가 많이 남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인비는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을 마치고 나온 순간만큼은 오히려 홀가분했다고 전했다.
'18번홀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실망스러웠느냐'는 질문에 그는 "4라운드는 1번홀 더블보기로 정말 좋지 않은 출발을 했다. 그린 위에서 퍼트를 4개나 했다. 매우 힘든 하루였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끝났다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다. 4라운드 내내 심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최종일에 36홀 플레이를 하는 동안 매우 강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번 주 내내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것이 힘들었다. 완전히 지친 상태다. 하지만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고 매우 편안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마지막 18번홀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 그는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는데 18번홀만큼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끝났구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전했다.
박인비의 그랜드슬램 도전은 잠시 멈췄을 뿐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는 9월12일부터 개막하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둔다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다.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한 욕심을 묻는 질문에 박인비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한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에 충분히 잘 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 다시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매우 힘든 과정이었고 이 기록을 넘어서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우선 내 플레이를 US오픈 때처럼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전에 좀처럼 하지 않았던 스리퍼트를 많이 할 정도로 퍼팅에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동기부여가 떨어졌을 것이라는 지적에는 "정상에서 멀어졌을 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무엇인가 다른 일에서 영감을 찾기도 힘들 것 같다. 당분간 좋지 않았던 기억은 잊고 좋은 것만 생각하려고 한다"고 했다.
박인비는 "우선 2~3일 동안은 아무 것도 안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에너지를 재충전해서 다음 대회를 다시 준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