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의 역사는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압독국에서 시작한다. 신라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버틴 불굴의 기상과 신라에 합병된 이후 화랑의 주축 세력으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강인함이 압독인의 얼이었다.이를 증명하듯 신라 선덕여왕 때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의 군주로 있을 당시 화랑을 훈련시켰다는 연병장이 압량, 내리, 선화리 등 3곳에 흔적이 남아있어 사적 218호로 지정되어 있다.압독인의 기상과 얼은 삼국통일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원효대사와 설총선생의 출현과 암울했던 고려시대 민족의 일체감과 혼을 일깨워준 일연선사 출현의 토양이 되었다.경산에서는 이러한 민족의 정신적 지주라 할수 있는 3분의 성현(聖賢)이 탄생한 곳이라 하여 경산을 「삼성현의 고장」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번은 들어본 이름이지만 경산이 자랑하고 싶은 역사적인 인물이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원효는(617~686) 신라시대 고승으로 성은 설씨, 법명이 원효로 진평왕39년(617년) 경산(압량주)에서 테어났다. 무애(無碍), 화쟁(和諍), 일심(一心)사상을 주창하며,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한국의 불교사에서 가장 위대한 고승의 한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설총은(660~?) 원효대사의 아들로 신라 십현의 한사람으로 벼슬은 한림(翰林)을 지냈으며 주로 왕의 자문역을 맡아 보았고 이두문자를 집대성하여 백성들이 문자를 쉽게 해석할 수 있게 했다. 그가 펼친 도의(道義)사상은 도덕과 윤리를 숭상하고 충효의 근간이 되었다.일연은(1206~1289) 고려후기 고승으로 성은 김씨, 본명은 견명이며 경산에서 태어났다. 한국 고대에 정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서민들의 입으로 구전되어온 신화와 설화 그리고 향가를 집대성한 ‘삼국유사’를 편찬하여 1200년대 당시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략으로 암울했던 고려사회에 민족혼을 불러 일으켜 나라를 구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적인 성현이다. 삼성현 즉, 원효대사·설총선생·일연선사의 공통점은 서민(백성) 사랑 이외에 학문과 교육을 대단히 중시했었다. 이것은 오늘날 경산에 전국 기초자치단체로는 가장 많은 12개 대학이 입지하게 된 이유라 할 수 있다.1995년 경산시·군이 통합되던 당시 7개교였던 대학이 12개교로 5개교가 늘어났고, 16만 5천명이던 인구가 25만 5천명으로 9만명이나 늘어나 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학도시로 성장하고 있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영남대학교를 비롯하여 대구대, 대구한의대, 대구가톨릭대, 경일대, 대구미래대, 경산1대학, 대경대, 대신대, 영남신학대, 대구외국어대, 영남외국어대 등 대구·경북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학들이 모두 경산에 몰려있다.이렇듯 경산시는 대학도시의 이미지에 걸맞게 성장하기 위해 대구지하철 경산연장과 경제자유구역 경산지식산업지구 및 대구경북연구개발특구를 조성하고, 영남대 역세권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관광산업의 생산과 소비가 함께하는 융합형 창조서비스 전용지구인 「경산청년문화 창의지구」 조성을 야심차게 계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외국 대학생이 참여한 ‘지구촌 학생 어울림 마당’을 개최하는가 하면 대학(생)을 컨셉으로 한 전국 대학럭비선수권대회, 전한국대학스포츠대제전, 국제대학생자작자동차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위상을 높혀가고 있다.경산시는 앞으로 관내 대학에 교양과목으로 ‘경산학’ 강좌를 개설하여 경산의 역사, 문화, 관광, 인문, 지리, 산업 등을 특강형식으로 운영하여 대학도시?교육도시다운 면모를 갖춰갈 계획이다. 경산 사람들은 이렇게 경산시가 대학도시·교육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데는 경산에서 태어나신 삼성현의 빛나는 지혜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경산시장  최영조>